[서평] 마이클 풀란의 『학교 개혁은 왜 실패하는가』를 읽고
[서평] 마이클 풀란의 『학교 개혁은 왜 실패하는가』를 읽고
마이클 풀란의『학교 개혁은 왜 실패하는가』는 교육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단순한 질문 이상의 묵직한 성찰을 던지는 고전입니다.
수많은 교육 개혁 정책이 발표되고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왜 번번이 실패의 쓴맛을 경험하는가에 대한 그의 분석은 상당한 통찰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현직 교사이자 전문적 학습공동체 리더십인 필자의 관점에서 이 책이 교육에 던지는 메시지를 다각적으로 조명하고자 합니다.
먼저,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교육변화에 대한 이해 — 변화의 의미, 그 과제와 통찰들을 이론적으로 제시
- 학교 및 학구 수준에서의 변화 — 교사, 교장,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중간 리더(학구 행정가)의 역할
- 광역 및 국가 수준의 변화 — 정책과 제도, 정부의 역할까지 아우름
의미의 부재: 왜 좋은 의도의 개혁도 공허해지는가
풀란은 ‘의미(meaning)’와 ‘행동(action)’의 결합이 없으면 변화는 지속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교실 현장에서 느끼는 개혁의 온도는 정책 입안자들의 그것과 사뭇 다릅니다.
이 책의 핵심은 개혁의 주체인 교사들이 변화의 의미를 주관적으로 구성하지 못하면,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는 통찰에 있습니다. 교육 과정 개편, 새로운 평가 방식 도입 등 훌륭한 취지의 개혁안들이 학교에 내려올 때, 교사들은 종종 ‘왜(Why)’가 아닌 ‘무엇을(What)’과 ‘어떻게(How)’에 대한 지침만을 전달받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풀란이 지적하듯, 개혁은 기술적인 문제(technical problems)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적 과정(social process)입니다. 새로운 교수법을 연수받고 관련 기자재를 지급받는다고 해서 교사의 신념과 교육 철학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교사 개개인이 새로운 변화를 자신의 교육적 신념과 연결하고, 동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의미를 재구성하며 내면화할 때 비로소 실제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는 행정적 편의와 가시적 성과에 매몰된 개혁이 왜 교사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결국 교실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겉도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입니다.
관계와 문화: 변화의 진정한 동력
전문적 학습공동체에 애착을 가진 리더십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을 얻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풀란은 성공적인 변화의 핵심 요인으로 압력과 지원(pressure and support), 그리고 동료 교사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합니다. 이는 전문적 학습공동체의 작동 원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개혁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교사들을 변화의 대상으로만 볼 뿐,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율적 고립을 자처해버린 교실 안에서 각자 고군분투하는 문화 속에서는 어떤 혁신도 뿌리내리기 어렵습니다. 전문적 학습공동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대안을 제시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수업을 공개하고, 학생들의 배움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교육적 어려움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교사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변화에 대한 집단적 효능감을 키워나갑니다. 풀란의 통찰처럼, 의미 있는 상호작용과 협력적 학교 문화의 구축 없이는 그 어떤 개혁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 학교 개혁의 성패는 정책이 아닌 문화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복잡성을 외면한 선형적 개혁의 한계
풀란은 교육 개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 자체를 전환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우리는 흔히 교육 개혁을 ‘투입-과정-산출’이라는 선형적 모델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좋은 정책을 투입하면, 교사들이 충실히 이행하여, 향상된 학업 성치도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단순한 기대입니다. 하지만 풀란은 교육 현장이란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로 가득 찬 복잡계(complex system)임을 분명히 합니다.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등 다양한 주체들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비선형적(non-linear)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고의 정책(the best policy)’을 찾는 데 몰두하기보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이 마주한 복잡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capacity building)하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개혁의 패러다임을 통제와 관리에서 신뢰와 지원으로 전환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결론: 다시 현장의 목소리로
교육의 변화를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지만 정작 교육 변화의 원리와 지침, 핵심 프로세스에 관해 무지한 채, 탁상공론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많아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마이클 풀란의 『학교 개혁은 왜 실패하는가』를 완독하고 나서 든 생각은 ‘이 책은 한 번 읽을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읽어도 그때의 또 다른 깊은 울림과 의미를 주겠구나’ 하는 확신이었습니다. 이 책은 교사에게는 변화의 주체로서 자신의 의미를 찾을 것을, 리더에게는 관계와 문화의 중요성을, 정책가에게는 복잡성에 대한 이해를 촉구합니다. 학교의 변화는 위로부터의 지시와 외부적 성과에 기반한 책무성만이 아닌, 교사들의 자발성과 동료성이 살아 숨 쉬는 아래로부터의 실천이 만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그의 메시지는 어쩌면 AI 디지털 기반의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우리 교육계에 필요한 인사이트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선한 의도가 더 이상 실패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풀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