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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로운 인지 현실을 위한 새로운 이론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인간의 학습과 사고가 더 이상 개인의 두뇌 안에서만 일어나는 고립된 과정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제 AI라는 강력한 인지적 파트너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이는 20세기의 교육 및 인지 이론들이 전제했던 기본 가정들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 이론들의 통찰을 통합하고 AI 시대의 현실에 맞게 확장한 새로운 이론적 프레임워크, 즉 ‘반성적 상호작용주의 프레임워크(Reflective Interactionist Framework, RIF)’를 제안합니다. ​ RIF의 핵심 주장은 AI 시대의 학습과 사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석의 단위를 개별 인간이나 개별 AI에서 벗어나, 이 둘이 결합된 ‘인간-AI 다이아드(dyad)’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다이아드 내에서 학습은 반성적 탐구의 순환 과정을 통해 일어나며, 이 과정은 인간의 메타인지적 조율에 의해 능동적으로 관리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프레임워크 자체는 실용주의적 원칙에 따라 실제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검증되고 수정되어야 합니다.


RIF의 네 가지 핵심 원리

[원리 1] 상호작용주의와 발현

RIF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인지를 개별 행위자의 속성이 아닌, 상호작용 시스템의 발현적(emergent) 속성으로 보는 것입니다.

(1) 분석 단위로서의 인간-AI 다이아드

우리는 더 이상 “학습자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만 물을 수 없습니다. 이제 “인간과 AI가 함께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Felten이 ‘복합적 인간-AI 편견’ 개념을 통해 보여주었듯이, 인간의 인지 편향과 AI의 알고리즘 편향이 만날 때, 그 결과는 단순히 두 편향의 합이 아니라 서로를 증폭시키거나 감소시키는 새로운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학습, 창의성, 문제 해결의 진정한 주체는 인간-AI 다이아드 그 자체입니다.

(2) 분산된 인지와 창의성

Sawyer의 ‘분산된 창의성’ 모델은 창의성이 한 개인의 머릿속이 아니라 여러 사람, 도구, 환경에 걸쳐 분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AI는 이 분산된 인지 시스템의 강력한 일부가 됩니다. 아이디어는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AI 간의 예측 불가능하고 즉흥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발현됩니다.


[원리 2] 반성적 탐구

인간-AI 다이아드 내에서 의미 있는 학습과 성장은 John Dewey와 Donald Schön의 이론에 기반한 반성적 탐구의 순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1) 경험과 문제 해결의 순환

Dewey가 주장했듯이, 진정한 사고는 경험 속에서 문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시작됩니다. 인간-AI 다이아드는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AI를 통해 데이터 수집 및 분석), 가설을 세우고(인간의 직관과 AI의 패턴 인식을 결합), 해결책을 실험하며(AI 기반 시뮬레이션 또는 프로토타이핑), 그 결과를 성찰하는 순환 과정을 거칩니다.

(2) 상황과의 대화

Schön의 ‘실행 중 성찰(reflection-in-action)’ 개념은 이 과정을 더욱 구체화합니다. 전문가는 문제 상황과 역동적인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접근 방식을 실시간으로 수정합니다. RIF에서 AI는 이 대화의 능동적인 참여자가 됩니다. AI는 상황에 대한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하고, 인간은 그 데이터를 해석하며 자신의 암묵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음 행동을 결정합니다. 이 과정 전체가 하나의 통합된 반성적 실천이 됩니다.


[원리 3] 인지적 유연성과 메타인지적 조율

인간-AI 다이아드가 모든 과제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제의 특성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인지 모드는 달라지며, 이 전환을 관리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메타인지입니다.

(1) 인지 연속체 위의 움직임

이중 과정 이론(DPT)의 경직된 이분법은 최신 신경과학 연구와 상충되며, 실제 인지의 복잡성을 설명하기에 부족합니다. Hammond의 ‘인지 연속체 이론(CCT)’은 순수한 직관에서 순수한 분석에 이르는 유연한 스펙트럼을 제시하며, 대부분의 복잡한 과제는 둘이 혼합된 ‘준합리성’ 영역에 속한다고 봅니다. RIF는 이 연속체 모델을 채택하여, 인간-AI 다이아드가 과제의 구조에 따라 이 연속체 위를 유연하게 ‘진동’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 인간의 메타인지적 조율자 역할

이 진동을 이끄는 주체는 바로 인간의 메타인지입니다. 인간은 ‘생각에 대한 생각’을 통해 현재 과제에 가장 적합한 인지 모드가 무엇인지 판단하고, AI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데이터 분석 도구로 쓸지, 아이디어 생성 파트너로 쓸지 등) 전략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AI 시대의 핵심 역량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AI와 함께 지식을 다루는 과정을 계획, 점검, 평가하는 메타인지 능력입니다. AI에 대한 맹목적 의존으로 인한 ‘메타인지적 게으름’ 은 인간이 이 중요한 조율자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학습의 질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습니다.


[원리 4] 실용주의적 기반

RIF는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의 유용성을 통해 그 가치가 입증되고 끊임없이 발전해야 하는 살아있는 이론입니다.

(1) 경험으로부터의 원칙 도출

실용주의 철학은 추상적 원리보다 구체적인 경험과 실제 결과를 우선시합니다. 현재의 하향식 AI 윤리 및 정렬 접근법이 현실과의 단절로 비판받는 것처럼, 교육 이론 역시 추상적인 모델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RIF의 원칙들은 실제 교육 현장에서 인간과 AI가 상호작용하며 발생하는 성공과 실패 사례들을 경험적으로 관찰하고, 그로부터 귀납적으로 원칙을 도출하는 상향식 전략을 통해 지속적으로 검증되고 개선되어야 합니다.

(2) 결과 중심의 적응

실용주의자에게 진리란 ‘작동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RIF에 기반한 교육적 개입(예: 새로운 AI 튜터링 시스템, 협력 학습 과제)의 효과는 그것이 실제로 학생들의 반성적 사고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키는가라는 실제적 결과에 의해 판단되어야 합니다. 이론은 현실을 예측하는 도구이며, 예측이 틀렸을 때 기꺼이 수정되어야 합니다.


교육 현장에의 적용 및 시사점

반성적 상호작용주의 프레임워크(RIF)는 교육자와 AI 시스템 설계자에게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실천 방향을 제시합니다.

(1) 교육 목표의 재설정

학습의 목표를 ‘정답을 아는 것’에서 ‘AI와 함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능숙하게 조율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평가는 학생 개인의 지식 보유량이 아니라, 학생이 AI와 협력하여 문제를 정의하고, 비판적으로 정보를 평가하며,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과정’의 질을 측정해야 합니다.

(2) 교사의 역할 변화

교사는 지식 전달자에서 학습 경험 설계자이자 메타인지 코치로 변화해야 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이 AI와 효과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반성적 탐구를 수행할 수 있는 문제 상황을 설계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 과정을 스스로 조율하도록 격려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3) AI 교육 도구의 설계 원칙

AI 튜터나 학습 보조 도구는 단순히 정답을 제공하는 척척박사가 아니라, 학생의 메타인지를 자극하는 메타인지 코치 내지 파트너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AI는 정답을 주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웠니?”, “네가 생각하는 핵심 개념은 무엇이니?”와 같은 질문을 던지거나, “나는 이 문제에 대해 70% 확신하지만, 이런 부분은 불확실해”라며 자신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학생의 비판적 사고와 주도성을 촉진해야 합니다.

결론

반성적 상호작용주의 프레임워크(RIF)는 AI를 인간 인지의 위협이 아닌, 그 잠재력을 증강시키는 파트너로 만들기 위한 이론적 청사진입니다. 이 프레임워크는 인간 고유의 강점인 메타인지, 반성(성찰), 그리고 실제적 경험을 통한 적응 능력을 AI 시대의 핵심 역량으로 재정의합니다. RIF를 통해 우리는 기술에 종속되는 미래가 아닌, 기술과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새로운 학습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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