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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답을 고르는 능력은 낡은 평가인가?
AI 시대의 교육 변화 논의에서 비판적 사고와 판단 능력이 핵심 역량으로 부상한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답 중 가장 타당한 것을 ‘고르는’ 객관식 평가는 낡은 방식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는 AI 시대에 중요한 능력으로 판단을 강조하면서도, 판단을 요구하는 특정 평가 방식은 외면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AI 시대 평가 논의와 역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는 대학입학제도 개혁을 논의하며 AI 시대에 필요한 미래 역량을 기르기 위한 평가 방식 전환을 강조한다. 서·논술형 평가 확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논의되는 내용이다. 생성형 AI가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답을 더 많이 만드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사실인지, 어떤 근거가 타당한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이상한 질문이 생긴다. AI 시대에 판단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왜 여러 답 가운데 가장 타당한 답을 비교하고 판단해 고르게 하는 객관식 평가는 낡은 평가라고 규정하는가. 판단이 미래 역량이라면 판단을 요구하는 평가 역시 미래형일 수 있어야 한다.
‘고른다’는 행위에 담긴 사고 과정
AI가 같은 질문에 다섯 개의 답을 내놓았다고 가정한다. 그 답들은 각기 다른 문제를 지닌다. 하나는 사실관계는 맞지만 중요한 조건을 빠뜨리고, 다른 하나는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인과관계가 틀린다. 일부 자료만 선택해 결론을 왜곡한 답도 있고, 근거는 많지만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답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사실과 근거, 논리적 연결이 가장 타당하다.
학생에게 “이 가운데 가장 타당한 답을 고르시오”라고 묻는 상황에서, 학생은 다음의 사고 과정을 거친다.
- 각 답의 사실관계를 파악한다.
- 각 답의 전제를 비교한다.
- 근거와 결론이 제대로 연결되는지 따진다.
- 오류와 편향을 찾아낸다.
- 마지막으로 가장 타당한 답을 선택한다.
최종적으로 답안지에 적는 것은 번호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번호에 도달하기까지 학생에게 요구된 사고가 단순했던 것은 아니다. 번호 하나를 적었다고 생각이 짧은 것도 아니며, 한 페이지를 썼다고 생각이 깊은 것도 아니다. 응답의 형식과 사고의 수준은 같은 것이 아니다.
평가 형식에 대한 익숙한 오해
사람들은 흔히 ‘쓴다’는 행위에는 사고라는 가치를 부여하고, ‘고른다’는 행위에는 암기라는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서술형 평가라고 해서 자동으로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 문장을 외워 길게 쓰는 형태의 평가도 가능하다. 반대로 선택형 문항이라도 여러 자료를 비교하고, 잘못된 추론을 찾아내며, 서로 충돌하는 주장 가운데 가장 타당한 결론을 고르게 할 수 있다.
현행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객관식 문항 전부를 단순 암기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능 문항 중에는 알고 있는 지식을 새로운 자료와 조건에 적용하고, 선택지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며, 주어진 정보에서 타당한 결론을 찾아야 풀 수 있는 문항이 많다. 또한 지식을 기억하는 일 자체를 사고와 반대되는 것으로 볼 이유도 없다. 무엇이 맞는지 비교하고 판단하려면 그 판단에 사용할 지식이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학생이 답을 쓰느냐 고르느냐가 아니다. 그 답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비교하고,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가에 평가의 본질이 있다.
아래 표는 평가 방식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AI 시대에 재고할 점을 비교한다.
| 평가 방식 | 일반적인 인식 (AI 시대 이전 및 현재 논의) | 본문의 주장 (AI 시대에 재고할 점) |
|---|---|---|
| 객관식 | 낡은 평가, 주로 암기력 측정 | 판단, 비교, 선택 능력 요구; 미래 역량과 연결될 수 있음 |
| 서·논술형 | 미래형 평가, 사고력 및 표현력 측정 | AI가 답안 생성 가능; 학생의 실제 사고 확인의 어려움 증가 |
AI 시대, ‘잘 고르는 능력’의 중요성
생성형 AI는 정보를 찾는 것을 넘어 설명, 요약, 논리 구성, 반론 제시까지 수행한다. 무엇보다 몇 초 만에 여러 개의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낸다. 이제 문제는 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답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답들은 모두 같은 질이 아니다.
AI가 생성한 답안에는 다양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사실 자체가 틀리거나, 사실은 맞지만 과도한 해석이나 추론이 덧붙여질 수 있다. 한 조각의 사실 위에 여러 해석과 추론이 쌓이면 어느 순간 전체가 확인된 사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은 AI가 만든 여러 답 중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사실관계와 근거를 확인하고, 논리의 비약과 빠진 조건을 찾아내며, 여러 답 가운데 가장 타당한 것을 판단해 선택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선택한 답을 수정하고 재구성할 수도 있다. 학생이 답을 처음부터 직접 써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 과정을 단순한 암기나 찍기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AI 시대에는 생성하는 능력만큼이나 판별하고, 비교하고, 선택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수 있다. 주어진 조건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어떤 주장이 더 타당한지, 어떤 정보가 믿을 만한지, 어떤 답에 오류가 있는지 판단하는 능력 말이다. AI가 생각을 대신 써주는 시대라면, 인간의 사고는 ‘무엇을 써냈는가’뿐만 아니라 ‘무엇을 선택했고 왜 선택했는가’에서도 드러난다.
서·논술형 평가의 타당성 재검토
국가교육위원회가 ‘시대가 변했으니 평가도 변해야 한다’는 명제를 대입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그 변화는 객관식에만 적용될 수 없다. 생성형 AI가 등장하기 전에는 학생이 직접 문장을 구성하고 논거를 세워 써낸 답안이 학생 자신의 지식과 사고, 표현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물론 그때도 글쓰기 능력과 깊이 사고하는 능력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답안을 만들어낸 주체가 학생 자신이라는 전제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생성형 AI 이후에는 이 전제 자체가 달라진다. AI는 질문을 만들고, 주장을 세우고, 근거를 배열하며, 반론을 구성하고, 표현을 다듬어 완성된 글까지 만들어낸다. 학생이 쓸 법한 생각조차 학생보다 더 학생답게, 더 그럴듯하게 써낼 수 있다. 그렇다면 ‘학생이 무엇을 썼는가’와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생각하고 판단했는가’ 사이의 관계 역시 예전과 같다고 전제할 수 없다.
이는 서·논술형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시험장에서 AI 사용을 차단하고 학생이 직접 답을 쓰게 한다면, 논증하고 구성하며 표현하는 능력을 여전히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AI 시대에 우리가 평가하려는 것은 AI의 도움 없이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답을 만들어내는 능력인가, 아니면 AI가 만들어낸 답을 검증하고, 오류를 찾아내며, 여러 대안 가운데 더 타당한 것을 판단하고, 필요하면 수정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인가.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평가도 변해야 한다면, 시대 변화의 대상에서 서·논술형만 제외할 이유는 없다. AI가 질문과 답안, 논거와 표현까지 생성하는 시대에는 서·논술형 역시 그 평가적 의미와 타당성을 새롭게 검증해야 한다. AI 이전의 평가 가치가 AI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한 뒤 객관식만 ‘과거의 평가’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는다. 오히려 생성형 AI가 가장 직접적으로 대신하는 행위 가운데 하나가 ‘쓰기’이다. AI 시대라는 이유로 객관식의 가치는 낮아졌다고 말하면서, 왜 AI가 직접 대신하고 있는 ‘쓰기’의 평가 가치는 그대로라고 보는가.
평가의 본질은 형식 너머에 있다
객관식이 서·논술형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특정한 응답 형식을 ‘과거와 미래’, ‘암기와 사고’라는 이분법으로 나누고, 그에 서로 다른 가치를 부여해 평가 방법 자체를 서열화하는 데 있다.
대입 개혁의 핵심은 특정 평가 형식을 미래형으로 선언하는 데 있지 않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먼저 답해야 할 것은 어떤 능력을 왜 대학 선발에서 평가하려는지, 그리고 그 능력을 어떤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지이다. AI 시대라고 해서 객관식이 자동으로 낡은 평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서·논술형이 자동으로 미래형 평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AI는 두 평가 방식 모두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평가 방법은 그다음 문제이다. 미래 교육이 판단하는 능력을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선택한다’는 행위에는 낡은 교육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모순적이다. 문제는 고르느냐 쓰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판단하게 하느냐에 있다. AI 시대라는 변화가 곧 서·논술형 확대의 정답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실만으로 특정 평가 형식을 미래형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다. 수능에 서·논술형을 도입하기에 앞서, ‘객관식=과거·암기, 서·논술형=미래·사고’라는 익숙한 구분부터 다시 판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