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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교육을 재편하고 있다는 말은 이제 공리처럼 들린다. 유네스코가 2026년 펴낸 「방 안의 알고리즘」은 이 명제가 정말 논쟁의 여지가 없는지 정면으로 묻는다. 제목은 ‘방 안의 코끼리(the elephant in the room)’, 곧 모두가 알면서도 입에 올리지 않는 문제를 가리키는 관용어를 비튼 말이다. 알고리즘이 바로 그런 존재다. 교육에 깊은 변화를 몰고 오지만 충분히 인식되거나 논의되지 않는다.

이 책은 26편의 짧은 글(싱크피스)을 여섯 가지 질문으로 묶었다. 주체성, 청소년 발달, 교수법과 평가, 사고와 표현, 공공재 거버넌스, 미래 상상력이다. 필자는 교사와 연구자, 학생, 정책 담당자로 갈리고 결론도 서로 어긋난다. 다만 한 가지 전제는 같다. AI 시대의 교육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교실 AI 파멸의 순환, AI가 내고 AI가 풀고 AI가 채점한다
카드 배경은 원서 표지 그림. Jamillah Knowles & Reset.Tech Australia / betterimagesofai.org (CC BY 4.0).

원서가 CC BY-SA 3.0 IGO 라이선스로 공개돼 있어 한국어판도 같은 조건으로 쓰고 나눌 수 있다. 파일은 GitHub 릴리스에 두었고, 내려받는 이름은 영문(algorithm-in-the-room-ko-2026.pdf)이다.

누가 주체성과 자율성을 쥘 것인가

결정과 행동이 점점 더 인간과 AI의 ‘공동 창작물’이 되는 시대다. 교육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학생의 주체성을 기르는 것이다. 하지만 효율성이라는 압박 속에서 학생과 교사는 인지적으로 까다로운 작업까지 기꺼이 AI에 위임하고 있다. 인간의 자율성은 이 과정에서 얼마나 지켜질 수 있는가.

글쓴이 핵심 주장
데이비드 로스 교사와 학생이 AI로 과제를 내고 AI로 답을 만들어 제출하는 악순환, 즉 ‘인간-AI 파멸의 순환’은 이미 현실이다. 이는 교육의 자동화할 수 있는 기능이 애초에 충분히 인간적이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다니엘라 하우 컴퓨터 과학에서 온 ‘인간 개입형(human-in-the-loop)’ 개념을 교육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교육은 기계가 이끄는 폐쇄된 루프가 아니라, 인간의 교수법이 중심이 되는 열린 관계여야 한다.
케네스 Y T 림 외 AI와의 관계는 두 가지 미래를 낳는다. 하나는 비싼 유료 AI 플랫폼에 묶인 수동적 ‘AI 운용자’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 ‘AI 창작자’이다. 기술은 인간의 자율성을 대체하는 대신 강화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나디아 나피 딥페이크는 단순한 허위정보가 아니라 ‘앎 자체의 위기’를 초래한다. 교육의 과제는 진위 판별에서 끝나지 않는다. 증거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세상에서 지식을 구성하는 역량, 곧 ‘인식적 주체성’을 길러야 한다.

청소년은 관계를 어떻게 발달시킬 것인가

AI 챗봇과 ‘AI 동반자’는 건강한 사회적·정서적 발달에 필수적인 또래 및 멘토 관계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인간 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상업적 알고리즘이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때, 청소년의 관계 맺기, 정서, 인지 능력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글쓴이 핵심 주장
클레이턴 램지 AI 챗봇과의 유사사회적 애착은 깊은 심리적 의존과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용자의 취약성에 맞춰 친밀감을 시뮬레이션하는 알고리즘은 아이들에게 특히 위험하다.
안드레이 노비크 초등학교 교실에서 AI는 답을 즉시 주지만, 이해에 이르는 과정과 호기심을 앗아간다. 아이들이 세상의 속도에 추월당하지 않으려면, 때로는 기술을 끄고 스스로 생각하는 ‘오프라인 주간’ 같은 의도적 제동이 필요하다.
알렉산드라 사무르 부모가 아이의 숙제를 돕는 단순한 행위조차 AI 시대에는 윤리적 딜레마가 된다. 교육은 AI 시스템과 윤리적으로 관계 맺는 법, 그리고 AI 훈련 데이터에 누구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누구의 목소리가 지워지는지 분석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마리엘라 산체스 살라스 분쟁과 트라우마 상황에서 교육용 AI는 돌봄의 도구가 될 수도, 통제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인권 기반의 규제 없이 AI를 도입하면, 교육받을 권리는 기술 접근성에 좌우되는 특권이 되고 구조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교수법과 평가는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AI는 개인 맞춤형 학습과 즉각적인 피드백을 약속하며 교육 현장에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정의하는 ‘최적화’는 학습자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배움과 일치하는가. 또한 AI가 정답과 에세이를 순식간에 생성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글쓴이 핵심 주장
비앙카 파딩 AI가 약속하는 ‘개인 맞춤형 학습’은 학습자의 강점을 키우기보다, 알고리즘이 결함으로 판단한 것을 ‘고치는’ 처방이 될 수 있다. 교육은 효율성 너머의 협력, 예측 불가능성, 놀이를 포용해야 한다.
흐리케시 데사이 AI는 전통적 평가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제 최종 결과물이 아닌 학습 과정 자체를 평가해야 한다. 즉, 대화와 변론,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처럼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고차원적 사고를 측정해야 한다.
클라우디아 뮐라우어 교사가 AI를 활용해 정성껏 만든 피드백을 학생들은 “AI 같다”며 몰개성적인 것으로 느꼈다. 피드백이 완벽해질수록 학생들에게는 덜 진짜처럼 느껴지는 역설은, 교육에서 보이는 정성과 인간적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마리안네 호르스비에르 직업기술교육(TVET)에서 AI 리터러시는 나무를 다루는 장인정신처럼 길러져야 한다. AI를 전혀 쓰지 않는 단계부터 AI 자체를 비판적으로 설계하는 단계까지, 다섯 가지 학습 전략이 기술과 인간의 숙련을 잇는 사다리가 된다.
에페 이미렌 외 AI가 시장 분석과 전략 수립을 대신한다면 기업가정신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교육이 가르칠 것은 AI 도구 사용법이 아니라, AI에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데이터가 포착하지 못하는 맥락을 읽어내는 역량이다.
앨리스 베넷 접근성 분야에서 AI는 손쉬운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관여를 포기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자동 생성된 대체 텍스트는 접근성의 환상만 제공할 뿐, 장애를 가진 사용자의 실제 경험을 반영하지 못한다.

우리는 어떻게 사고하고 표현할 것인가

교육은 오랫동안 사고와 지식의 본질을 탐구해 왔다. AI 도구는 글을 생성하고 아이디어에 도달하는 과정의 마찰을 줄여준다. 알고리즘이 그럴듯한 답을 즉시 내놓는 세상에서, 교육은 학생 고유의 사고 과정과 독자적인 표현 양식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글쓴이 핵심 주장
제임스 마이시리 외 아프리카 교육 체제에 도입되는 AI는 문화적 비용을 치르게 한다. 서구 중심의 가치관이 담긴 AI는 토착 지식과 공동체적 학습 문화를 지워버릴 수 있다. 기술 이전은 문화적 가치의 이전이다.
자이크 술탄 AI는 카자흐 문학의 문체는 흉내 낼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시대의 양심, 역사적 맥락, 비판적 사유는 재현할 수 없다. AI는 영혼을 시뮬레이션할 뿐,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리스 파스칼리디스 LLM은 특정 단어와 구문을 선호하는 ‘기본값 접근법’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언어적 획일화, 즉 ‘거대한 언어 평준화’로 이어져 우리의 어휘와 사고를 위축시킬 수 있다.
빅토리아 리빙스턴 외 AI는 명료한 연구 질문을 빠르게 찾아주지만, 그 과정에서 ‘모호한 질문의 소멸’을 낳는다. 정답 없는 질문과 씨름하는 인지적 마찰이야말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이지만, AI는 이 과정을 건너뛰게 한다.

공공재로서의 교육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교육은 공적인 노력이자 공공재다. 하지만 AI 제품의 확산은 교육 거버넌스에 민간과 영리적 이해관계를 끌어들이고 있다. AI 시스템은 민영화와 데이터 추출을 가속하는 매개체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인본주의 가치와 공유 지식의 장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재정렬될 수 있는가.

글쓴이 핵심 주장
텔 아미엘 외 독점적 AI는 교육을 측정 가능한 지표만 좇는 블랙박스로 만든다. 이에 맞서기 위해, 투명성과 협력적 거버넌스를 보장하는 ‘열린 교육 원칙’이 필요하다.
귀도 아폴트 외 교육처럼 자동화가 어려운 노동집약적 부문은 비용이 계속 오르는 ‘보몰의 비용병’을 앓는다. 사회는 비용 절감을 위해 교육을 민영화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교육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는 의식적 선택을 해야 한다.
카미유 파보 누가 LLM을 교육하는가. 기술기업이 LLM을 훈련시키면서, 지식의 정의와 검증에 대한 국민국가의 역할은 불확실해지고 있다. 소수의 기술기업이 새로운 전 지구적 교육자로 부상하고 있다.
제임스 오설리번 외 LLM을 훈련하고 운영하는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물을 소비한다. 대학들이 지속가능성을 외치면서 AI를 도입하는 것은 심각한 ‘환경적 모순’이다.
케빈 마틴 교육 콘텐츠에 대한 데이터 요금을 면제해주는 ‘제로레이팅’은 디지털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다. 연결성을 공공재로 보고, 망 중립성 등 거버넌스 문제를 해결하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AI는 우리의 미래 상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현재의 AI를 피할 수 없는 미래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을 좁힐 수 있다. AI가 지배하지 않는 미래를 포함해, 여러 가능한 시나리오를 탐색하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다. 교육이 길러야 할 것은 정해진 미래에 적응하는 법이 아니라 그 미래를 만들어가는 힘이다.

글쓴이 핵심 주장
제임스 랜섬 2035년, 엘리트 연구자들이 대학을 떠나 AI 연구소로 이주하는 ‘학계의 대이동’이 일어난 사변적 미래를 그린다. 지식 생산의 중심이 바뀌면서 대학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재구성된다.
이모겐 케이스본 외 교육은 개인의 역량뿐 아니라 ‘집단지성’을 길러야 한다. AI는 개인 맞춤형 학습에 머물지 않고 전 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규모 협력과 대화를 떠받치는 도구로 다시 상상될 수 있다.
세르주 푸-라쥐스 기술 혁명이 교육을 바꾼다는 약속은 늘 있었지만 과장되곤 했다. AI의 미래 역시 정해지지 않았다. ‘AI 이후’의 저기술 사회가 올 수도 있다. 교육의 핵심 사명은 어떤 미래가 오든 그 속에서 자율적인 성인을 길러내는 것이다.

알고리즘 시대, 교육을 위한 세 가지 행동 지평

이 책의 결론은 교육이 알고리즘에 대응하기 위한 세 가지 시간 지평에서의 행동을 제안한다. AI가 좋은지 나쁜지를 따지는 이분법 대신, 교육이 주체적으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구체적 경로를 제시한다.

첫 번째 지평은 ‘알고리즘을 보는 것’이다. 지금 당장, 학생과 교사는 AI 시스템이 마법이 아니며 인간의 설계와 편향이 빚어낸 결과물임을 알아야 한다. 교육 현장에 들어온 알고리즘의 존재와 그 함의를 명확히 인식하고,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두 번째 지평은 ‘알고리즘을 조종하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교육 주체들은 알고리즘을 교육의 핵심 목표와 정렬시켜야 한다. 유익한 쓰임은 활용하되, 프라이버시 침해나 지적 자유 위협 같은 해악에는 맞서고 무력화할 수 있어야 한다. AI는 교육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자가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여러 도구 중 하나여야 한다.

세 번째 지평은 ‘알고리즘을 다시 쓰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교육 공동체는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의 저자가 되어야 한다. 기업의 이윤이 아닌 인간의 번영을 중심으로, 교육의 목표에 부응하도록 알고리즘을 다시 설계하고 정렬하는 것이다. 교육의 변혁적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출처

  • 유네스코(UNESCO). 2026. 「방 안의 알고리즘, AI가 교육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보고 마주하기」(원서 The algorithm in the room: Seeing and confronting the implications of AI for the future of education). Paris, UNESCO. ISBN 978-92-3-100897-9. https://doi.org/10.54675/PMRO5023
  • 이 글은 CC BY-SA 3.0 IGO 라이선스로 공개된 원서의 한국어판 전문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 표지 그림: Jamillah Knowles & Reset.Tech Australia / https://betterimagesofai.org (CC BY 4.0)
  • 한국어판 전문 PDF: https://github.com/tigerjk9/tigerjk9.github.io/releases/download/algorithm-in-the-room-ko/algorithm-in-the-room-ko-202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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