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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또는 교육 정책 현장에서 새로운 기술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같은 질문에 봉착한다. 이 기술이 과연 우리 현장의 고유한 맥락과 요구를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는가? 답은 늘 만족스럽지 않았다. 수십 년간 교육 기술은 ‘모두에게 한 벌’이라는 획일적 논리를 따랐기 때문이다.

개발 민주화가 교육 생태계를 바꾸는 방식

획일적 플랫폼의 실패: 교육 현장이 아는 구조적 한계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써온 수많은 교육 플랫폼은 사실상 ‘획일화의 역사’였다. 단일한 디자인, 고정된 규칙, 중앙에서 통제하는 알고리즘이 전국 수십만 교실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마치 거대한 옷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복을 모두에게 입힌 것과 같다. 교육 현장의 교사라면 이러한 한계를 매일같이 경험한다. 우리 반 학생들의 개별화된 학습 경로, 특정 지역 사회의 문화적 특성, 혹은 교사 공동체만의 고유한 교수법을 기존 플랫폼이 유연하게 담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는 단순한 기능 부족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하나의 플랫폼이 하나의 세계관을 강요할 때 발생하는 구조적 한계다. 미얀마 로힝야족 학살 당시 페이스북이 혐오 표현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유엔 보고서는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시 미얀마에서 페이스북은 인터넷 그 자체였지만, 1,800만 사용자 대비 버마어 콘텐츠 검토 인력은 고작 2명에 불과했다. 이 사례는 획일적 설계 안에 개발팀의 문화적, 지적 전제가 그대로 녹아들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 경고한다. 우리 교육 현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교육 플랫폼 개발사의 시각이 교실의 복잡한 현실, 아이들의 다양한 배경, 교사들의 깊은 고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과장된 희망이다. 특정 지역의 교육 철학이나 특정 교과의 교수법이 담보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다.

코드 생산 비용의 급락: ‘만들기’의 주체가 바뀐다

최근 몇 년 사이, 코드를 만드는 비용 구조 자체가 뒤흔들리고 있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 기반의 에이전틱 코딩이 단순한 실험 도구를 넘어 실제 코드 생산 엔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30년 이상 소프트웨어를 직접 작성해온 시니어 엔지니어들조차 LLM을 풀타임 코딩 엔진으로 활용한다. 이들의 전환은 LLM이 코딩에 ‘쓸모없었다면 가장 먼저 반대했을 것’이라는 반직관적 판단을 넘어선다.

이는 개발자 생산성 증대라는 표면적 이야기보다 훨씬 깊은 변화를 의미한다. 소프트웨어 생산의 진입 장벽이 근본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학교나 교육 공동체가 자체적인 학습 플랫폼을 만들려면 전문 개발팀을 꾸리거나, 워드프레스 같은 오픈소스 솔루션에도 상당한 커스터마이징 역량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그 판이 달라진다.

두 가지 핵심 변화가 이 흐름을 가속화한다.

변화의 축 이전의 역할 (전통적) 새로운 역할 (에이전틱 코딩 시대) 교육 현장으로의 함의
시민 개발자 IT 전문가 또는 외부 개발사에 의존 현업 담당자(교사)가 직접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교사가 자기 교실에 맞는 맞춤형 학습 도구를 직접 설계하고 구현한다.
포워드 개발자 코드 작성에 집중 아키텍처 설계, AI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품질 검증에 집중한다. 전문 개발자는 시스템 안정성확장성을 담보하며, 교사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제 프로덕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가트너는 대기업에서 시민 개발자가 전문 개발자의 4배에 달할 것이라 전망한다. 교육 맥락에서 보면 이는 곧 교사가 단순히 기술을 ‘소비하는’ 주체를 넘어, ‘생산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교사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이런 학습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AI가 초안 코드를 생성하고, 전문 역량을 가진 포워드 개발자는 이 아키텍처와 안전성을 검증한다. 교실의 요구가 바로 기술 구현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오픈 프로토콜: 고립된 교실을 잇는 디지털 다리

개별 교실과 학교가 각자의 맞춤형 학습 도구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 수천, 수만 개의 고립된 디지털 섬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정보의 단절, 비효율적인 자원 활용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바로 여기서 오픈 프로토콜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웹이 HTTP와 HTML이라는 개방형 표준 위에서 모든 정보를 교환하듯이, 차세대 교육 플랫폼 역시 오픈 프로토콜 위에 구축되어야 한다.

현재 소셜 웹에서 두 가지 주요 프로토콜이 주목받는다.

프로토콜 특징 핵심 초점 교육 현장 적용 시 시사점
ActivityPub W3C 권고 표준. 서로 다른 플랫폼 간 메시지 교환. 마스토돈, 스레드 등이 사용. 서버 간 소통 여러 학교, 학년, 또는 지역 교육청의 다양한 학습 플랫폼들이 상호 운용될 수 있다. 교사들이 각자 만든 자료를 쉽게 공유하고 활용한다.
ATProto 블루스카이가 개발. 사용자의 정체성과 데이터 이동성에 중점. 자신의 도메인으로 아이디 사용 가능. 사용자 중심 데이터 주권 학생들이 특정 플랫폼에 묶이지 않고, 자신의 학습 이력과 프로필을 소유하고 이동할 수 있다. 데이터 주권 확보가 핵심이다.

두 프로토콜의 핵심은 누구든 호환 가능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교사나 교육기관이 ActivityPub 또는 ATProto 명세를 따른다면, 기존 생태계와 즉시 연결되는 맞춤형 교육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오픈 프로토콜은 단순히 소수의 애플리케이션이 여러 인스턴스로 운영되는 것을 조율하는 역할을 넘어선다. 에이전틱 코딩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맞춤형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연결하는 조율 레이어가 된다. 이는 곧 학교 간, 지역 교육청 간, 나아가 전 국가적 교육 자원 공유 시스템이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빠진 퍼즐 조각: 신뢰·안전, 그리고 가치 정렬의 중요성

물론 맞춤형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드는 것과 이를 ‘안전하게’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콘텐츠 관리, 신고 시스템, 악용 방지 같은 신뢰와 안전(Trust & Safety) 기능은 교육 플랫폼 운영의 핵심 요소다. 학대의 신호는 교실마다, 학년마다 다르고, 안전의 기준 또한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다. 미얀마 페이스북의 실패 사례에서 보았듯이, 획일적 기준은 교육 현장의 복잡한 신뢰와 안전 요구를 담아낼 수 없다. 오픈 프로토콜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공한다. 신뢰와 안전을 위한 전용 오픈 프로토콜이 있다면, 각 교육기관은 서드파티 안전 도구와 유연하게 연결할 수 있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학교들이 자원을 모아 공동의 콘텐츠 관리 시스템을 운영할 수도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코드를 생성하는 AI 자체의 가치 정렬 문제다. 현재 대부분의 LLM은 실리콘밸리의 문화와 전제를 반영한다. 학습 데이터의 편향은 이미 수많은 연구에서 문서화되어 있다. 진정으로 교실 중심의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면, 그 소프트웨어를 생성하는 AI 자체가 교육 현장의 가치와 정렬되어야 한다. 단순히 기술의 편의성만을 추구하다 보면, AI가 생성하는 자료나 도구들이 특정 편견을 재생산하거나 교육적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이 방향에서 소형 언어 모델(SLM)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SLM은 소수 언어와 문화권에 특화된 AI를 만드는 데 쓰인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SLM은 소규모 데이터셋으로도 특정 언어에 맞춘 도구를 개발할 수 있어 원주민 언어 보존에 기여한다. 캐나다 밀라 연구소의 FLAIR 프로젝트는 북미 원주민 언어를 위한 음성 인식 AI를 커뮤니티와 함께 개발 중이다. 2025년 출범한 모질라 데이터 컬렉티브는 286개 언어의 300개 이상 데이터셋을 커뮤니티 주도로 관리하며, 데이터 제공자가 자신의 데이터 사용 조건을 직접 설정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했다. 교육 현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특정 지역 교육청이나 학교 공동체가 직접 학습 데이터를 관리하고, 그들의 가치에 맞는 소형 AI 모델을 개발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전략적 탐구자의 시선: 채널 주권과 거버넌스

솔직히 말하면,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시장 구조의 변화다. 소프트웨어 생산 비용이 급락하면, ‘규모의 경제’로 유지되던 플랫폼 독점 구조가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교육 현장에서의 파급력은 더욱 크다. 지금까지 학교와 교사는 거대 플랫폼의 ‘세입자’였다. 하지만 오픈 프로토콜 기반의 맞춤형 플랫폼은 교육 공동체에게 ‘자가 소유 채널’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교육의 채널 주권을 이야기한다.

시민 개발자와 포워드 개발자의 등장은 이 구도를 가속화한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누가 만드는가’의 경계는 재설정된다. 엑셀이 재무 분석을, 캔바가 디자인을 민주화했듯이, LLM 기반 코딩은 소프트웨어 생산을 민주화하고 있다. 시민 개발자(교사)가 ‘초안’을 만들고 포워드 개발자(기술 전문 교사 또는 교육청 전문 인력)가 이를 프로덕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협업 모델은, 내가 실무에서 자주 설계했던 빌드-검증 분리 구조와 같은 논리다.

다만 한 가지. 기술이 민주화되면 결국 생태계는 다시 몇 개의 허브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누가 프로토콜 명세를 관리하고 유지하는가’에 새로운 형태의 권력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 변화가 정착되려면 교사들이 함께 실험하고 성찰하는 구조가 먼저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 기술적 자율성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갖추고 있는가? 교육 공동체가 자신들의 플랫폼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관리할 역량을 갖추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면, 기술적 자율성은 한낱 구호에 그칠 것이다.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리하면 이렇다.

  • 획일적 플랫폼의 한계는 구조적 문제다. 특정 교육 철학이나 지역적 특수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중앙화된 시스템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
  • 에이전틱 코딩과 오픈 프로토콜의 결합은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교사(시민 개발자)가 직접 교실에 맞는 학습 도구를 만들고, 이를 다른 학교와 유연하게 연결할 수 있게 된다. 전문 개발자는 더 높은 수준의 설계와 안전성 확보에 집중한다.
  • 진짜 어려운 문제는 기술이 아닌 사람에게 있다. 신뢰와 안전, AI의 가치 정렬, 그리고 교육 공동체의 거버넌스 같은 ‘인간적 질문’이 전면에 떠오른다.

벤 베르뮬러가 쓴 문장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코드가 해결된 문제가 되면, 결국 인간적인 것들이 가장 중요한 자리로 올라온다.”

이제 ‘무엇이 필요한지, 왜 필요한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멘로파크의 개발자가 아니라, 교육 현장 스스로가 정의하는 시대가 온다. 당신의 교실, 당신의 학교는 이 변화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당장 당신의 전문적 학습 공동체(PLC)에서, 우리가 직접 만들고 싶은 교육 도구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만의 가치를 AI에 정렬시킬 것인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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