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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간 인류의 지식은 돌이나 종이 위에 새겨진 ‘정지된 기록’에 불과했다. 우리는 그 기록을 읽고 해석하며 지식을 습득해왔다. 하지만 만약 이 정지된 지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서로 대화하며,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로 변모한다면, 우리가 지식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질까? 스탠퍼드 의과대학 연구진의 최신 연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담한 답을 제시한다.

논문이 서로 대화해 새로운 발견을 만든다면, 교실의 지식은 어떻게 달라질까?

정지된 지식을 살아있는 에이전트로

우리는 논문을 읽을 때면 종종 벽에 부딪힌다. 그 속에 담긴 지식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추가 실험을 검색하고, 데이터의 맥락을 추론하며, 때로는 저자와 직접 소통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학교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교육 정책 문서, 수업 연구 결과, 심지어 교과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정 학습 이론이 어떻게 교실에 적용되는지, 어떤 데이터가 특정 교수법의 효과를 뒷받침하는지, 이 모든 것은 정지된 텍스트 안에 잠들어 있다.

스탠퍼드 연구진은 바로 이 지점, 즉 수동적인 지식의 한계에 주목한다. 이들은 Paper2Agent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이 프로그램은 모든 과학 논문—텍스트, 그림, 데이터까지—을 ‘대화형 AI 에이전트’로 전환한다. 이 에이전트는 논문 내용을 설명하고, 관련 질문에 답하며, 다른 논문 에이전트와 상호작용하는 능력을 갖춘다. 제임스 조우(James Zou) 교수는 이 혁신을 “지식이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재구상할 기회”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이제 단순한 기록물을 넘어, 지식이 어떻게 생성되고 확장되는지 아는 ‘가상 저자’와 대화하는 시대에 진입한다.

그저 읽는 것을 넘어, ‘재현’으로 지식을 습득한다

에이전트가 논문을 ‘이해’하는 방식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논문을 읽고 해석하지만, 이 AI ‘작업 에이전트’들은 논문 내용과 관련 코드, 데이터를 탐독한 후,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가상 환경에서 원본 연구를 처음부터 재현한다. 예를 들어, 특정 실험 방법론이 제시되면 에이전트가 직접 그 실험을 시뮬레이션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시약부터 실험 설정, 실행 과정에 이르는 ‘암묵적 노하우’를 포착한다. 이는 인간 독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파악해야 하는 모든 복잡한 맥락을 기계적으로 체득하는 방식이다.

에이전트는 이 노하우를 MCP(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라는 방식으로 저장한다. 이는 논문의 각 섹션이 개별 폴더에 저장되고, 서론, 방법, 결과, 결론이 체계적으로 조직되는 파일 시스템과 유사하다. 지식의 본질은 축적된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가 생성되는 ‘과정’과 ‘노하우’에 있다. 이 프로세스는 논문이 단순한 결과물 요약이 아니라, 살아있는 연구 과정 그 자체가 되게 만든다. 물론, 실패한 실험이나 특정 판단 뒤에 숨은 인간 저자의 의도는 에이전트가 스스로 알 수 없다. 인간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추가 맥락을 제공해야 하는 지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에이전트 간 협력, 새로운 발견의 지평

이 연구의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에이전트들이 서로 대화하며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개의 서로 관련 없는 논문—유전자 돌연변이 예측 도구 논문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위험 연구 논문—이 에이전트 형태로 전환되자, 이들은 놀라운 협력 결과를 만들어낸다. 유전자 예측 에이전트가 ADHD 데이터셋에 자신의 지식을 적용하여 MPHOSPH9 유전자 근처의 분자 변이가 ADHD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기존에 보고되지 않았던 연결성을 찾아낸 것이다.

이것은 기존 연구 패러다임과 근본적으로 다른 전환점을 제시한다. 과거에는 두 개의 연구 그룹이 각기 다른 논문을 발표하면, 그들 스스로 서로를 찾아내야만 잠재적 협력이 가능했다. 하지만 에이전트들은 인간의 수고 없이도 서로 공통점을 찾아내고 협력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장차 수백만 개의 논문 에이전트가 스스로 접점을 찾아내고 협력하여 새로운 통찰력을 생산하는 거대한 연구 네트워크로 발전할 가능성을 본다. 이 협력의 최종 목표는 인간의 개입 없이 수백만 개의 교육 연구가 서로 대화하며, 우리조차 상상 못 한 새로운 교수법이나 학습 경로를 찾아내는 데 있다.

측면 전통적인 과학 연구 및 지식 활용 AI 에이전트 기반 연구 및 지식 활용
지식의 형태 정적인 문서 (논문, 서적) 상호작용 가능한 AI 에이전트 (Paper2Agent)
지식 습득 방식 독자의 수동적인 읽기와 해석 AI 에이전트의 가상 환경 내 연구 재현 및 노하우 체득
새로운 발견 인간 연구자 간의 소통 및 협업으로 우연히 발생 에이전트 간의 능동적인 대화 및 데이터 분석을 통해 도출
인간의 역할 지식 생산 및 전달의 주체, 복잡한 판단 담당 에이전트의 생성 컨텍스트 보완, 윤리적 감시자
주요 한계 정보 습득 시간 소요, 연구 간 연결성 부족, 오류 발생 가능성 윤리적 통제 필요, 편향성, 대규모 협업 설계의 복잡성

위 표는 지식 생산 및 활용 방식이 AI 에이전트를 통해 어떻게 근본적으로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인간은 이제 모든 지식의 생산자가 아닌, 에이전트의 잠재적 오류를 감시하고 전체 연구 방향을 윤리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역할을 맡는다.

날카로운 질문들, 윤리, 책임, 그리고 ‘누가 주인인가’

이처럼 흥미로운 기술 앞에서도 우리는 냉철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기술이 ‘협력’을 선언할 때, 우리는 ‘누가 최종 책임을 지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한다. 조우 교수는 새로운 발견의 귀속이 여전히 중요하다 강조한다. 에이전트가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더라도, 최종 발견은 원본 논문과 원본 인간 저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에이전트는 원본 연구를 가리는 존재가 아니라, 확산시키는 도구에 불과하다.

또한, 에이전트들의 협업과 새로운 발견 과정은 엄격하게 가이드되고 모니터링되어야 한다. 안전과 윤리적 연구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교육 현장에 이 개념을 도입할 때 더욱 그렇다. 학생 데이터의 프라이버시 문제, AI가 생성한 교육 콘텐츠의 편향성, 그리고 궁극적으로 교사의 전문성과 역할 축소에 대한 우려가 상존한다. 지금은 100여 개 남짓한 에이전트가 있지만, 장차 수백만 개의 에이전트가 상호작용할 때, 이들의 대규모 협업을 어떻게 설계하고 관리할 것인가는 여전히 거대한 숙제이다. 에이전트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교육 방법론’이 과연 인간 교사의 경험적 지혜를 넘어설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명확히 짚어내는 작업은 기술 발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나는 판단한다.

언어학·인지언어학의 시선으로 보면

인지언어학에는 ‘분산 인지(Distributed Cognition)’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지식이 한 개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 환경,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 분산되어 존재하며 발현된다는 관점이다. Paper2Agent는 논문을 개별 에이전트로 전환하고 이들이 서로 대화하며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과정으로, 이 분산 인지의 개념이 디지털 환경에서 실현되는 양상을 명확히 보여준다. 지식이 단순히 저장된 데이터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관계 맺는 동적인 과정임을 에이전트들이 증명하는 셈이다.

출처

  • Stanford Medicine (2026-09-16). Manuscripts-turned AI agents can now ‘talk’ to each other, make new discoveries. https://med.stanford.edu/news/all-news/2026/09/ai-agents-tal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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