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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부정행위, 기술 아닌 ‘도덕적 정체성’에 답이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대학과 학교에서는 학생 부정행위 문제가 급부상했다. 많은 교육기관이 AI 탐지 도구 도입이나 시험 방식 변경을 모색한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부정행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부정행위를 원치 않게 만드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AI 시대, 부정행위의 새로운 얼굴
그랜트는 재택시험 전 학생들의 AI 부정행위 시도 소식을 듣고, 기존 문제를 폐기하고 “학생 부정행위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를 조직심리학 관점에서 설명하라는 과제를 냈다. 답변에서 학생들은 부정행위를 정직성의 문제로 보기보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다른 학생도 하니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이유로 설명했다. 이는 AI가 부정행위를 쉽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학생들의 부정행위 인식과 규범 자체를 변화시킨 사실을 보여준다.
심리학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경쟁이 심화되고 보상이 커질수록 부정행위는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성적, 취업, 장학금, 진학이 치열하게 얽힌 환경에서 학생들은 ‘나만 AI를 쓰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감시와 처벌만 강화하면 학생들은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들키지 않을까’를 고민한다. 시험장에서 손으로 글을 쓰게 하는 조치는 당장의 부정행위를 줄일 수 있지만, 학생들의 내면 깊은 생각까지는 바꾸지 못한다.
도덕적 정체성, 부정행위를 막는 내면의 나침반
그랜트가 문제 해결의 열쇠로 제시하는 개념은 도덕적 정체성(moral identity)이다. 도덕적 정체성이 약한 사람은 행동 전에 이익과 비용을 계산한다. ‘얼마나 이득일까’, ‘들킬 확률은’, ‘처벌을 감수할 만한가’를 따진다. 반면, 도덕적 정체성이 강한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부정행위로 이익을 얻을까’가 아니라 ‘나는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조직심리학 및 도덕심리학 분야에서는 이 개념을 오래 연구했다. 카를 아퀴노와 아메리쿠스 리드는 2002년 연구에서 ‘도덕적 정체성의 자기 중요성’을 두 가지 차원으로 분류했다.
| 차원 | 설명 | 효과 |
|---|---|---|
| 내면화 | 정직, 공정, 배려 등 도덕적 특성이 자기 정체성의 중심에 얼마나 깊이 자리 잡았는가 | 내면화가 강할수록 실제 부정행위와 이기적 행동이 줄어들며, 도움 행동은 증가한다. 행동 일관성도 높아진다. |
| 상징화 | 그런 도덕적 자아를 외부 행동으로 얼마나 드러내는가 |
내면화가 강할수록 그 사람의 행동은 상황이 바뀌어도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된다. 도덕성이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덕적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아퀴노와 동료들의 후속 연구는 도덕적 정체성이 상황에 따라 활성화되거나 억눌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쟁, 금전적 유인, 성과 압박 같은 외부 맥락은 도덕적 자아를 잠시 뒤로 밀어내고 계산적인 자아를 앞세울 수 있다. 그랜트가 지적한 ‘경쟁이 부정행위를 부추긴다’는 관찰은 이 메커니즘과 정확히 맞닿는다. 부정행위는 단지 나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자아가 외부 상황에 눌릴 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자기 합리화와 효과적인 윤리 교육
사람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면서도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번 한 번뿐이다’, ‘다들 한다’, ‘결과적으로 피해는 없다’는 식으로 행동과 정체성을 분리한다. 따라서 연구윤리와 학습윤리 교육은 단순히 금지 규정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아야 한다. 학생이 자신의 행동을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과 연결하여 생각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윤리 교육이 실제 행동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근거도 축적되어 있다. 과학 분야 윤리 교육 메타분석 연구들은 잘 설계된 윤리 교육이 참여자에게 상당한 효과를 준다고 보고한다. 다만, 효과는 교육 방식에 크게 좌우된다.
| 교육 방식 | 효과 크기 | 특징 |
|---|---|---|
| 일반 강의, 규범 준수형 교육 | 약함 | 무엇이 금지되는지 나열하는 방식 |
| 전문적 의사결정 훈련 | 큼 | 실제 상황에서 판단 과정을 훈련시키거나, 분야별 맞춤형 교육. 처벌 목록 암기가 아닌 옳은 행동 판단 경험 반복. |
중요한 점은 처벌 목록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로서 어떤 행동이 옳은지를 반복해서 판단하는 경험이 직업적, 도덕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AI 시대, 교육의 질문이 달라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AI 시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학생이 챗GPT를 썼는가”가 아닐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질문은 “학생이 AI를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지적 책임을 유지했는가”이다. AI가 생각을 돕는 것과 생각을 대신하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자료를 찾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받는 행위와, 자신이 하지 않은 생각을 마치 자신의 결과물처럼 제출하는 행위는 다르다. 이 차이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 자체가 앞으로 가르쳐야 할 핵심 역량이다.
그러므로 AI 시대의 연구윤리는 AI를 무조건 금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이 AI를 자유롭게 활용하면서도 “나는 왜 배우는가”, “이 결과는 정말 나의 지적 노력이라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연구자와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를 끊임없이 묻도록 유도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규칙을 어기지 않도록 감시하는 데 있지 않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을 때에도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데 있다.
AI 시대에 부정행위를 막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더 정교한 탐지 기술도, 더 엄격한 감독도 아니다. AI를 쓰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AI를 쓰면서도 자신의 지적 정직성과 책임을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것이 앞으로 교육과 연구윤리가 다루어야 할 더 본질적인 과제이다.
출처
- Adam Grant, “There’s Really Only One Way to Stop Students From Cheating,” The New York Times, 2026년 8월 26일, Opinion Guest Essay. https://www.nytimes.com/2026/08/26/opinion/students-cheating-ai.html
- Aquino, K., & Reed, A. II (2002). The self-importance of moral ident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3(6), 1423-14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