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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문 스물다섯 편을 채점하다가 같은 글을 두 번 읽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면, 착각이 아닐 수 있다. 올해 나온 연구 하나가 그 기시감에 숫자를 붙였다. 에세이 6,875편을 사람이 혼자 쓴 글, AI가 쓴 글, 사람과 AI가 함께 쓴 글 다섯 조건으로 나눠 겹겹이 비교한 연구다. 예상대로 AI의 손을 빌린 글은 품질 점수가 올랐다. 문제는 그다음 발견이다. 글의 짜임새가 서로 닮아 가면서 응집 구조의 다양성이 조건에 따라 70~78% 사라졌다. 잘 쓴 글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같은 글이 많아졌다.

노래방의 음정 보정 기능을 떠올리면 이 현상이 낯설지 않다. 보정을 걸면 누구의 노래든 음정이 맞는다. 대신 목소리의 개성이 깎여 나가 모두가 비슷하게 들린다. AI 피드백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서론에서 한 발 양보하고, 근거 셋을 병렬로 세우고, 전망으로 닫는 안정된 틀로 어떤 글이든 끌어당긴다. 틀에 들어간 글은 흠잡을 데가 없어지고, 서로 구별할 수도 없어진다.

이것이 왜 문제일까? 글쓰기 교육에서 글은 생각의 포장이 아니라 생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문단을 어떤 순서로 세울지 고민하는 동안 학생은 자기 논리의 약한 고리를 발견한다. 그 고민을 AI가 대신하면 완성된 글은 남고 그 발견은 사라진다. 실증 연구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대학생 60명을 12주간 추적한 연구에서 AI 피드백만 받은 집단은 문법과 문장 다양성이 늘었지만 비판적 사고와 글의 조직력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교사 피드백과 AI를 결합한 집단이 바로 그 두 항목에서 유의하게 앞섰다. AI는 문장을 고쳐 주지만, 생각을 밀어붙이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질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AI 피드백을 치우자는 결론으로 흐르기 쉽다. 앞의 6,875편 연구가 남긴 두 번째 발견이 방향을 바꾼다. 학생이 막연히 고쳐 달라고 맡기는 대신 요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자 획일화가 오히려 다양화로 반전됐다. 닮아 가는 것은 AI의 본성이 아니라 요청의 품질이 만든 결과였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고칠지 말하지 않으면 도구는 평균으로 수렴하고, 말하면 그 글만의 결이 살아남는다.

자기 생각의 명세서 쓰기

그렇다면 교실에서 가르칠 것이 분명해진다. 프롬프트 리터러시라 불러도 좋고, 자기 생각의 명세서 쓰기라 불러도 좋다. 고등학교 1학년 국어의 논설문 쓰기 단원이라고 하자. 첫 시간, 학급 전원이 자기 초고를 놓고 똑같은 요청을 던진다. “내 글 좋게 고쳐줘.” 돌아온 스물다섯 편을 모니터에 띄우면 학생들이 먼저 웃는다. 다 같은 글이 돼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시간, 요청을 다시 쓴다. 내 주장은 무엇인지, 독자는 누구인지, 어떤 문장은 손대지 말아야 하는지를 적어 넣는다. 셋째 시간, 두 결과를 나란히 놓고 묻는다. 무엇이 살아남았고 무엇이 지워졌을까? 이 세 시간 동안 학생이 배우는 것은 자기 글에서 무엇이 자기 것인지 골라내는 눈이다.

모방에도 가치가 있다는 반론은 정당하다. 글의 틀 자체를 아직 익히지 못한 학생에게 AI가 보여 주는 안정된 구조는 실제로 좋은 발판이 된다. 상향 평준화라면 획일화가 무슨 흠이냐는 물음도 가능하다. 인정한다. 문제는 발판 자체보다, 발판에서 내려오는 설계가 없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틀을 빌리게 하되 학기 후반에는 그 틀을 어디서 부술지 스스로 정하게 하는 단계가 뒤따라야 모방이 학습이 된다.

AI를 쓰는 학급에서 교사의 일은 이제 글을 고쳐 주는 것보다 앞에 있다. 학생마다 다르게 쓸 이유를 지켜 주는 일이다. 스물다섯 편이 스물다섯 목소리로 남아 있는 한, 글이 좋아지는 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출처

  • Does AI Homogenize Student Thinking? A Multi-Dimensional Analysis of Structural Convergence in AI-Augmented Essays. (2026). arXiv. https://arxiv.org/pdf/2603.21228
  • EFL 학습자 60명 대상 인간-AI 하이브리드 피드백 실증 연구. (2025). Taylor & Francis Online.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17501229.2025.2503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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