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 / 582

5 분 소요

hits

AI 기술의 발전은 교육계에 많은 논의를 불러왔다. AI 시대에 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질문하며, 인간 학습의 근본 원리가 AI에 의해 변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AI 기술 자체보다 교육학과 교육정책 관점에서 AI 시대 교육의 본질을 탐색한다.

AI 시대 인간 학습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질문과 답은 상호보완적이다

AI가 답을 만들어 주는 시대이니 이제 질문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답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연구 질문, 토론 질문, 후속 질문까지 생성한다. AI가 질문까지 만들면 질문하는 교육마저 필요 없게 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더욱이 AI가 답을 제공하더라도 그 답의 타당성, 편향 여부를 판단하고 검증하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러한 판단 능력이 없다면 AI가 제공한 답은 지식이 아니라 단순한 출력에 불과하다. 따라서 ‘답보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질문과 답은 서로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다.

질문은 답을 찾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미 축적된 지식과 답이 있어야 새로운 질문도 가능하다. 하나의 답은 새로운 지식이 되고, 이 지식은 다음 질문의 출발점이 된다. 질문은 답의 반대말이 아니며, 답 역시 질문의 종착점이 아니다. 인간의 학습은 기존 지식에서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질문하고, 탐구하며, 답을 찾고, 그 답을 검증하여 지식을 수정하고 확장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축적된 지식에서 다시 질문이 탄생한다. 질문과 답은 학습 과정 안에서 서로를 만들어 낸다.

인지과학 관점에서도 이 관계는 분리되기 어렵다. 새로운 정보는 이미 아는 지식과 연결될 때 비로소 이해된다. 충분히 조직된 배경 지식은 추론, 문제 해결, 비판적 사고의 토대가 된다. 질문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좋은 질문은 지식의 경계에서 탄생한다.

좋은 질문은 지식의 경계에서 탄생한다

인간은 모르는 것을 질문한다. 완전히 모른다면 무엇을 물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고, 모든 것을 안다면 질문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앎이 어디서 멈추는지 인식하고, 기존 지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점을 발견하며, 무엇을 문제로 볼지 구성할 때 질문이 시작된다.

질문은 단순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현상을 연결하고, 어떤 전제를 의심하며, 무엇을 문제로 삼을 것인지는 인간이 선택하고 구성한다. 인간이 창조하는 것은 세계 자체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질문의 틀이다.

같은 현실을 보고도 질문이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생의 성취가 낮은 이유를 학생 개인에게 묻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성취를 판단하는 기준이 적절한지 묻는 사람도 있다. AI 시대의 인간다움을 AI에서 찾는 사람과, 왜 인간다움의 기준을 AI에서 찾는지 묻는 사람의 관점은 다르다.

현상은 같아도 질문의 틀이 달라지면 문제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답보다 더 위험하다. 답은 질문이 정한 범위 안에서 만들어진다. 질문을 만드는 개념과 기준이 잘못되었다면 아무리 정교한 답을 내놓아도 문제의 본질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질문이 답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질문과 답은 독립적으로 떼어내어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나 정책적으로 위계화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하나의 사고 과정 안에서 서로의 질을 만들어 가는 상보적 관계다. 좋은 질문은 더 나은 답을 가능하게 하고, 그 답은 다시 새로운 지식이 되어 다음 질문의 출발점이 된다.

따라서 성찰이 필요한 것은 ‘답 중심 교육’이나 ‘질문 중심 교육’ 그 자체가 아니다. 어느 한쪽을 다른 쪽보다 우위에 두는 정책 담론이 문제이다. AI 시대 교육 정책의 혁신은 답 중심에서 질문 중심으로 중심축을 옮기는 데 있지 않다. 질문과 답을 서로 대립시키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하는 사고방식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

질문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지식을 주변화하는 것도 위험하다. 지식은 교육의 전부가 아니지만, 지식을 주변화한 채 질문, 탐구, 토론, 비판, 창의성, 주도성을 논할 수는 없다. 충분한 지식 없이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탐구하며, 어떤 근거로 토론하고 비판할 수 있는가. 좋은 질문을 만들고 판단하려면 지식이 필요하고, 답을 탐색하며 타당성을 검증하려면 다시 지식이 필요하다. 질문과 답 모두 지식 위에서 이루어진다. 지식은 질문과 답에 맞서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다. 질문을 만들고 답을 탐색하며 그 결과를 검증하고 새로운 질문으로 나아가게 하는 학습의 토대이다.

편향을 바꾸는 것이 혁신인가

교육 정책의 변화 방식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하브루타질문 중심 수업이 혁신 방법으로 등장했다. AI가 없던 시절에도 질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지금은 AI가 답을 대신하는 시대이므로 질문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질문이라는 교육적 행위는 새롭게 발견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이유와 이름을 붙여 다시 소환된다.

이러한 정책 언어는 개념과 원리 위에서 축적되기보다 유행처럼 등장하고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효과와 한계를 충분히 검증해 다음 정책에 축적하기보다, 새로운 정책이 등장하면 이전의 언어는 사라지고 또 다른 혁신의 언어가 그 자리를 채운다.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 언어처럼 소비되는 질문 편향 담론 역시 단독 현상이 아니다. 교육 정책 담론은 새로운 것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 것을 그 반대편에 두는 방식으로 변화를 설명해 왔다.

다음 표는 교육 정책에서 반복되는 편향을 보여준다.

교육 요소 전통적/기존의 강조 새로운 정책/담론의 강조 정책 담론의 문제점
가치 지식 역량 지식과 역량을 대립시켜 한쪽만 우위에 두는 편향
교수법 가르침 배움 가르침과 배움을 대립시켜 한쪽만 우위에 두는 편향
평가 방식 객관식 서·논술형 특정 평가 방식의 우열을 가리는 편향
학습 과정 답 찾기 질문과 탐구 질문과 답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편향

이러한 정책적 편향은 문제가 되는 한쪽의 한계를 보완하기보다, 그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반대편을 새로운 기준으로 세운다. 특히 정치와 교육 행정이 여러 교수·학습 방법 중 특정한 방식을 수업 혁신의 대표 모델로 제시하거나, 특정 수업·평가 방식을 법과 제도로 일반화하려 하면 교사의 전문적 판단 영역이 좁아진다. 교육의 목적과 기준을 세워야 할 정책과 법이 방법까지 선택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학생과 교과, 수업 맥락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지 판단해야 할 교사의 전문성은 약화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어떤 개념과 판단 기준 위에서 이루어지는지가 중요하다. 개념과 기준을 충분히 세우기 전에 새로운 정책 언어부터 앞세우면 용어는 바뀌어도 편향은 반복될 수 있다. ‘답보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정책 담론을 만들려면, 먼저 무엇을 질문이라 하고 무엇을 답이라 하는지 개념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야 기존의 답 중심 편향을 해소한 것인지, 아니면 답이라는 편향에서 질문이라는 편향으로 방향만 바꾼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그 판단 기준조차 없다면 새로운 담론은 편향을 해체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름의 편향을 반복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슬로건은 달라져도 사고의 틀은 같다. 지식이냐 역량이냐, 가르침이냐 배움이냐, 답이냐 질문이냐, 객관식이냐 서·논술형이냐를 선택하게 한다. 그러나 인간의 학습에서 이들은 어느 하나를 제거해야 다른 하나가 성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인간의 성장과 발달을 다루는 교육 정책이라면 새로운 용어를 얼마나 빨리 도입했는가보다, 어떤 개념과 원리를 축적해 교육의 질을 지속해서 개선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새로운 슬로건이 등장할 때마다 이전의 교육을 낡은 것으로 밀어내는 대신, 무엇이 정말 잘못되었고 무엇은 여전히 필요한지를 먼저 구분해야 한다.

교육의 기준은 인간의 학습이다

AI 시대가 되었다고 인간의 학습 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AI는 인간이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질문을 만드는 방식도, 답을 찾는 속도도 바꾼다. 그러나 기술이 학습을 돕는 방식이 바뀌었다고 인간이 배우는 원리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인간은 아는 것에서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질문을 만들고, 답을 탐색하며, 그 답을 의심하고 검증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수정하고 확장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AI 시대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답을 버리고 질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배우고, 질문을 만들고, 답을 탐색하고, 그 답을 검증하며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의 전체 사고 과정을 길러 내는 일이다.

AI가 질문도 만들고 답도 만드는 시대라면 오히려 교육의 기준은 더 분명해진다. 교육의 기준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배우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성장하는가이다.

요리과학·발효학의 시선으로 보면

요리과학이나 발효학에서 이상적인 결과는 여러 요소가 균형을 이룰 때 탄생한다. 예를 들어, 빵을 만들 때 밀가루, 물, 소금, 효모는 각각 중요하지만, 어느 하나가 다른 요소보다 ‘더 중요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효모만 많거나 물만 너무 많으면 발효 과정 전체가 실패한다. 이는 교육에서 질문과 답, 그리고 지식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여 다른 요소를 배제하려는 시도가 학습이라는 복잡한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각 요소는 상호 의존적이며, 전체 시스템의 질을 결정한다.

출처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