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 / 733

20 분 소요

hits

서울특별시교육청 창의미래교육과가 2026년 9월 『함께 만드는 수업, 서로 깊어지는 배움』을 펴냈다. 부제는 ‘협력적 수업설계 가이드북 with AI’이고, 표지에는 Teacher co-agency, co-design, co-creation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클릭 몇 번이면 수업안과 활동지가 나오는 시대에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서 출발해, 그 답을 동료 교사와 AI가 함께 판단하는 수업설계에서 찾는다. 원리와 절차 외에 18장짜리 실천 워크시트, 초·중·고 세 팀의 실천 기록, 현장 교사들이 직접 만들고 소스 코드까지 공개한 AI 에이전트 프로토타입 세 종을 함께 담았다.

AI 시대 협력적 수업설계 가이드북, 「함께 만드는 수업, 서로 깊어지는 배움」

‘딸깍’의 시대에 교사가 맡는 일

‘딸깍’은 마우스 클릭 소리를 흉내 낸 유행어로, 클릭 몇 번이면 AI가 무엇이든 만들어 준다는 뜻이다. SNS에는 수행평가 자료를 5분 만에 만들었다는 쇼츠가 돌고, 이를 본 교사는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FOMO)을 느낀다. 그런데 AI를 쓰면 쓸수록 ‘딸깍’으로 나온 자료가 생각만큼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도 쌓인다. 가이드북은 불안의 원인을 기술 격차보다 “도구는 빠르게 바뀌는데 내 역할이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는다. 그러니 이 불안을 교사 전문성이 사라지는 증거로 읽을 필요는 없다. 전문성의 무게중심이 자료 제작에서 교육적 판단과 수업설계로 옮겨 가는 중이라는 것이 책의 해석이다.

책은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교사의 역할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1. 학생을 깊이 있게 아는 사람. AI가 만드는 활동과 자료는 대체로 평균적인 상황을 위한 것이다. 같은 수업도 1반과 2반의 반응이 다르고, 오전의 3반과 오후의 3반이 다르다. 학생의 말과 표정, 침묵과 오류에서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신호를 읽어 내는 능력을 교사 노티싱(teacher noticing)이라 한다.
  2. 배움의 방향을 설정하는 사람. AI가 토론·프로젝트·게임형 활동을 몇 초 만에 쏟아낼수록 “이 중에서 무엇을 골라야 하는가?”가 어려워진다. 흥미로운 활동이 반드시 좋은 수업이 되지는 않는다.
  3. 교육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사람. 그럴듯함과 교육적 적절함은 다른 문제다. 책은 교사를 ‘교육과정 번역자’라 부른다. 여기서 번역은 성취기준을 쉬운 말로 풀어 쓰는 일과 다르다. 학교의 교육 방향, 학생의 삶과 발달 수준, 교실의 조건을 엮어 실제 학습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번역에는 선택이 따르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교육에서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는 AI 결과물을 마지막에 한 번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수업 목표를 정하는 순간부터 AI 활용의 목적과 범위를 정하고, 수업 중 학생 반응에 따라 활용 방식을 조정하고, 수업 뒤 AI 활용이 실제 배움으로 이어졌는지 해석하는 전 과정에 교사가 참여한다는 뜻이다. 책은 AI 산출물을 점검하는 기준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기준 점검 질문
정합성 수업 목표와 활동, 평가 기준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정확성 내용 오류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없는가
적합성 우리 학년과 학급, 학생의 수준과 경험에 맞는가
공정성 특정 학생이나 집단을 배제하거나 편향되게 표현하지 않는가
주도성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가

수업설계가 오히려 복잡해진 이유

자료가 빨리 만들어지는 것과 수업설계가 쉬워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책은 세 가지 이유로 오늘의 수업설계가 더 복잡해졌다고 본다.

첫째는 학생의 다양성과 주도성이다. 학생마다 필요한 지원과 도전의 수준이 다르고, 주도성이 살아 있는 수업은 활동을 많이 넣는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학생이 어떤 문제를 만나고, 어디서 도움을 받고, 어떻게 배움을 점검할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둘째는 인지적 참여다. ICAP 관점(Chi & Wylie, 2014)은 참여를 네 수준으로 나눈다. 설명을 듣거나 읽는 수동적 참여, 표시하고 고르고 분류하는 능동적 참여, 자기 말로 설명하고 질문을 만드는 구성적 참여, 동료와 근거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이해를 함께 만드는 상호작용적 참여다. 학생들이 바쁘게 움직인다고 해서 깊은 배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셋째는 AI 활용이다. AI의 답을 옮겨 적으면 수동적 참여에 머물고, 자기 생각과 비교해 고치고 동료와 다른 결과를 놓고 토론하면 구성적·상호작용적 참여로 나아간다. 언제, 어떤 목적으로, 어느 정도 AI를 쓰게 할지 교사가 의도적으로 조율하는 일을 책은 ‘AI 오케스트레이션’이라 부른다. TPACK을 다룬 대목에서는 우리 학교와 교실과 학생에 대한 맥락적 지식(XK)이 교과 내용, 교수 방법, 테크놀로지를 하나의 수업으로 묶는 핵심 기반이라고 강조한다. 책의 표현을 빌리면 AI 시대의 수업설계는 기술을 학생의 배움 속에 교육적으로 의미 있게 배치하는 문제다.

이렇게 판단할 조건이 늘어나면 한 사람의 관점으로 모든 학생의 반응을 내다보기 어렵다. 여러 교과가 만나는 융합 수업에서는 한 교사의 교과적 시각으로 놓치는 부분이 더 많다. 책이 말하는 ‘함께’는 일의 분담보다 판단의 공유에 가깝다. 더 나은 판단을 내리려고 서로의 전문성을 잇는 일이다.

협력적 수업설계의 정의와 근거

가이드북의 정의는 이렇다. “협력적 수업설계란 교사-교사, 교사-AI-교사 간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의 수업을 분석-설계-개발-실행-평가하는 전체 혹은 부분적인 행위.”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수업 전체 과정을 반드시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교사 한 명의 수업 실천이나 교사 한 명과 AI의 협업은 이 정의에 들어가지 않는다. AI는 교사 간의 협력적 주체성을 키우는 데 쓰인다.

책이 정리한 선행연구는 다음과 같다.

효과 연구 주요 내용
학생의 성장 Ronfeldt et al.(2015) 약 9,000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종단 연구. 협력이 활발한 학교의 교사들이 혼자 일하는 교사보다 학생 성취도를 유의미하게 높였고, 협력의 질이 학생 성취에 영향을 미쳤다
학생의 성장 Shen et al.(2020) 교사들이 단순 행정에 머물지 않고 ‘수업설계 리더십’을 발휘하며 협력할 때 학생 학업 성취도가 올랐다. 수업·평가 설계에 초점을 둔 협력적 리더십이 학생 성취와 가장 밀접했다
교사의 전문성 Cha & Ham(2012) 학생 중심 수업을 하는 교사는 동료와의 협력으로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구성주의적 교수활동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학교 문화 Voogt et al.(2016) 협력적 설계는 교사의 역량과 실천을 발전시키고 변화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해, 전문성 개발과 교육과정 변화 실행 모두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학교 문화 OECD(2025), TALIS 2024 매월 협력적 전문성 학습에 참여하는 교사와 교류·조정 활동에 참여하는 교사는 더 높은 직무 만족과 웰빙을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런 협력은 쉽지 않다. 책은 어려움을 세 가지로 짚는다. 협력할 시간이 없고, 협력적 수업설계를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경험이 없으며,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연구하는 학교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 TALIS 2024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자료와 학생 이야기를 나누는 얕은 협력은 비교적 흔하지만 함께 수업을 설계·운영하고 서로 관찰·피드백하는 깊은 협력은 드물었다. 가이드북은 우리나라가 조사국 가운데 교사 간 협력의 빈도와 깊이 모두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한다.

협력적 수업설계가 잘 이루어진 수업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 개인 설계에서 머릿속으로 생략하거나 합쳐 버리던 ADDIE(분석-설계-개발-실행-평가) 요소가 공동 산출물을 위해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팀의 공동 설계와 구성원의 개별 설계가 공존한다. 포스트잇, 메모지, 수업설계카드, 워크시트, AI 같은 도구로 보이지 않는 생각을 꺼내 놓는다. 그리고 라포 형성, 역할 분담, 목표 설정이 이루어지는 초기 단계에서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초기 단계가 부실하면 결과물이 약해지거나 갈등이 생긴다.

다섯 가지 원리와 T-CID 2.0

가이드북 2장은 「교사 간 협력적 수업설계원리 개발 연구(T-CID)」(이은상, 2020)를 바탕으로 한다. 이 연구가 밝힌 원리는 다섯 가지이고, 3장에서는 각 활동 단계에 이 원리를 태그로 붙여 둔다.

원리 정의 실제 활동에서의 모습
상호 의존 목적과 비전을 공유하고 교사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설계팀을 구성한다 팀원들이 목표를 공유하고 긴밀하게 연결된다
인지 분산 설계 팀의 인지를 사회적·물리적으로 분산하여 각각의 강점을 실현한다 생각과 결정, 진행 상황을 표와 기록지, 공유 문서에 나누어 담는다
활성화 설계 과정에서 팀원들의 아이디어 생성을 활성화한다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먼저 꺼내 논의의 재료를 마련한다
외현화 팀원들의 지식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효과적으로 공유한다 머릿속 생각을 키워드와 메모, 그림이나 표로 나타내 함께 본다
조정 팀원들의 지식을 통합하고 보완한다 여러 의견을 기준에 따라 묶고 비교해 공동의 결론으로 다듬는다

이 원리를 종합한 것이 교사 간 협력적 수업설계 모형(T-CID)이고, 가이드북은 여기에 AI를 인지적 파트너로 넣은 T-CID 2.0을 제안한다. 기존 모형의 구조와 활동은 유지하되, 교사 개인과 AI(선택)와 교사 팀이 상호작용하며 각 활동에서 탐색·확장·조정·정리를 되풀이하도록 재구성했다.

배경에는 OECD Teaching Compass(2025)의 공동주도성(co-agency)이 있다. 학습과 교육이 교사, 학생, 동료, 학부모, 기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관점이다. 수업설계 양상도 교사 개인의 설계에서 교사-교사의 협력으로, 다시 교사-AI-교사의 협력으로 옮겨 가고 있다.

책은 AI를 교사 개인 차원에서만 쓸 때의 한계도 분명히 적는다. 초안이 빨리 나오니 동료와 논의할 필요를 덜 느끼게 되고, AI 결과를 검토 없이 받아들이면 학습자 이해, 목표와의 정합성, 평가 타당성을 따지는 경험이 줄어 판단력이 약해진다. 학습 목표와 상호작용과 평가가 맞물려야 하는 학생 참여형 수업은 자료 생성만으로 설계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세우는 개념이 Human-AI Agency다. 인간과 AI가 상호작용 속에서 판단과 행동을 함께 구성해 가는 행위성을 말한다(Krakowski, 2025). AI가 설계에 참여한다는 말이 AI가 교사처럼 판단하고 책임진다는 뜻은 아니다. 책은 네 가지 전제를 둔다. AI가 내놓은 것은 설계의 출발점일 뿐이다. 최종 판단과 책임은 교사에게 있다. AI로 만든 아이디어와 자료는 동료와 함께 검토하고 성찰할 대상이다. AI로 탐색하고, 동료와 검토·조정하고, 다시 AI로 재구성하는 순환을 반복한다.

구분 기존 협력적 수업설계 Human-AI Agency 기반 협력적 수업설계
협력 구조 교사 ↔ 교사 교사 ↔ AI ↔ 교사
협력 방식 경험 공유와 합의 중심 다층적 상호작용을 통한 공동 탐색·조정
아이디어 제한된 아이디어 풀 확장된 아이디어 생성
자원 제약 시간·인력 제약 존재 AI를 통한 협력 효율 증대

각 활동 안에서 교사와 AI가 나누어 맡는 일은 네 단계로 정리된다.

단계 교사 AI 상호작용의 의미
탐색 맥락 이해, 아이디어 구상 정보·예시·질문 제시 설계 기반 마련
확장 아이디어 발전, 대안 검토 대안 생성 가능성 확장
조정 판단, 협의, 정교화 비교·정리·조정 지원 설계안 정교화와 합의
정리 결정, 성찰, 개선 점검, 기록 설계 완성

AI를 쓰는 것과 AI와 협력하는 것

2장 끝에서 책은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AI를 사용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AI와 협력하고 있을까요?” 계산기를 자주 쓴다고 계산기와 협력한다고 말하지 않듯, 묻고 답을 받는 것만으로는 협력이라 하기 어렵다. 가이드북은 Cukurova(2026)가 구분한 인간-AI 팀잉 다섯 수준을 수업설계에 옮겨 놓았다.

팀잉 수준 기능 수업설계에서의 모습
거래적 묻고 답하기 “토론 활동 5개 만들어 줘”라고 요청한다
상황적 상황 함께 보기 학생의 참여나 상호작용을 AI와 함께 살펴본다
운영적 목표 따라가기 교사가 정한 목표와 조건을 AI가 계속 반영한다
실천적 피드백에 맞춰 가기 교사의 수정과 피드백에 따라 AI의 제안이 달라진다
시너지적 함께 따져 보기 교사와 AI가 이유와 근거를 주고받으며 설계를 고친다

Cukurova는 1~4 수준을 엄밀한 의미의 협력으로 보지 않는다. 방향은 사람이 정하고 AI는 요청이나 피드백에 따라 움직일 뿐이기 때문이다. 서로 근거를 묻고 생각을 고치는 공동추론(co-reasoning)이 오가는 5수준에 이르러야 협력이라 부를 수 있다. 다만 책은 높은 수준이 늘 더 낫다고 말하지 않는다. 간단한 검색이나 자료 정리는 요청하고 받는 것으로 충분하고, 평가 기준처럼 여러 대안을 비교해야 하는 문제에서 더 깊은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수업설계의 목적에 따라 AI와 어디까지 함께 생각할지를 정하는 일 자체가 교사의 판단이다.

다섯 걸음과 18개 세부활동

3장은 협력적 수업설계를 한 해 농사에 빗댄다. 따라야 할 고정된 절차로 읽기보다 여행 가이드북의 추천 경로처럼 참고해 우리 학교와 우리 팀에 맞게 고르고 바꾸라는 안내다. 각 세부활동은 필요한 이유(WHY), 진행 방법(HOW), 활동 흐름, AI 활용 예시 프롬프트, 활동 사례, 돌아보기 질문으로 짜여 있다.

시작하기 전에 팀의 AI 활용 규칙부터 정하라고 권한다. AI처럼 의존과 사고의 외주화 가능성이 큰 도구일수록 원칙을 미리 합의해야 한다는 이유다. 책의 예시는 세 가지다. 팀이 충분히 논의한 뒤 AI를 쓴다. AI가 내놓은 결과는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후보이자 초안이며 판단은 교사 팀이 한다. 학생의 개인정보나 민감한 정보는 AI에 입력하지 않는다.

단계 세부활동
팀 준비(T) T-1 공동 비전 설정, T-2 수업설계 방향 설정, T-3 역할 배분, T-4 팀 규칙 결정, T-5 팀 일정 결정
분석(A) A-1 주제 선정 기준 논의 및 조정, A-2 비전에 적합한 주제 선정, A-3 주제의 상세 내용 분석, A-4 핵심 아이디어 도출 및 통합 수업목표 진술
설계(Ds) Ds-1 평가 설계, Ds-2 문제 상황 설정, Ds-3 학습활동 설계, Ds-4 도구 연결, Ds-5 스캐폴딩 설계
개발·실행(DI) DI-1 자료 탐색·개발, DI-2 수업 실행·기록
평가(E) E-1 수업 성찰과 공동 개선, E-2 협력 과정 성찰

팀 준비

팀 준비는 무엇을 향해 가르칠지, 어떤 방향으로 설계할지, 누가 무엇을 맡을지, 어떻게 함께 일할지, 언제까지 해낼지를 먼저 정해 두는 단계다. 이것이 있어야 나중에 의견이 갈리거나 일이 한쪽으로 쏠릴 때 돌아올 기준이 생긴다. 책의 ‘어느 교사의 이야기’는 작년에 “선생님은 사회, 저는 정보를 맡을게요”라며 역할부터 나눴다가 수업이 따로 흘러간 팀이, 올해는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정말 전하고 싶은 게 뭘까?”부터 물어 “우리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기”라는 비전에 이른 장면을 보여 준다. 그 교사는 “우리에게 없었던 건 능력이 아니라 함께 바라볼 방향이었다”고 적는다.

비전은 완성된 문장보다 각자 핵심 단어 3~5개를 꺼내 묶는 것으로 시작한다. 수업설계 방향은 “~한 수업이 되려면 ~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쓰고, 학생 이해·교수 방법·평가 방식·테크놀로지 활용 등으로 묶은 뒤 3~5가지로 확정한다. 실현 가능성을 따질 때 쓰는 ‘멈춤 신호’가 눈에 띈다. 한 명이라도 우리 교실에서는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느끼면 그 방향을 멈추고 다시 살펴보자고 청할 수 있는 장치로, 다수결에 묻히기 쉬운 부담을 드러낸다. 역할을 맡은 사람은 그 일을 혼자 처리하지 않고 해당 논의를 이끌고 결과를 정리하며, 최종 결정은 팀이 함께 한다. 일정은 수업 실행일에서 거꾸로 계산한다. AI는 비전 문장 후보를 만들고 방향 후보를 묶어 빈 곳을 짚는 데 쓴다. 책에 실린 프롬프트 예시는 이렇다.

“중학교 국어·사회·수학·정보 교과 교사 4명이 공동 수업을 설계 중. 각자 구상한 교육 비전 키워드: ‘우리 마을, 실제 문제 해결, 능동적 시민, 데이터로 보는 우리 동네, 함께 만드는 변화’. 이 키워드들을 조합해 공동 비전 문장 후보 3개 제안. 각 후보에 키워드가 어떻게 담겼는지 이유도 함께 제시.”

분석

분석은 비전을 실제로 가르칠 내용으로 바꾸는 단계다. 주제를 고르기 전에 “어떤 기준으로 고를 것인가”를 먼저 합의한다. 기준 없이 주제부터 꺼내면 목소리가 큰 쪽으로 기울기 쉽기 때문이다. 학교 차원에서 주제가 정해져 있다면 이 활동은 건너뛰어도 된다. 주제가 정해지면 각 교사가 자기 교과 성취기준을 지식·이해, 과정·기능, 가치·태도의 세 차원으로 분해하고, 겹치는 것은 묶고 맞지 않는 것은 덜어 내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한다. 그 위에 여러 교과를 아우르는 핵심 아이디어와, 이를 학생의 물음으로 바꾼 탐구 질문을 세우고 통합 수업목표를 진술한다. 진술 방식은 교과별 목표를 먼저 정해 통합하는 귀납적 방식과 공동 목표를 먼저 정해 교과로 내려가는 연역적 방식이 있다. 책은 백워드 설계(UbD)를 참고하라고 하면서 영속적 이해를 ‘상호의존’ 같은 단어 대신 “공동체는 구성원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서 유지된다”처럼 완결된 문장으로 쓰라고 권한다.

설계

설계는 평가에서 출발한다. 평가 요소와 방법을 정하고, 학생이 몰입할 문제 상황을 만들고, 학습활동을 배열하고, 도구를 연결하고, 스캐폴딩을 마련하는 순서다. 수업의 완성도는 활동을 몇 개 넣었느냐보다 평가-문제 상황-학습활동-도구-스캐폴딩이 얼마나 일관되게 이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평가 설계에서는 ‘협력’, ‘참여’ 같은 추상어를 관찰 가능한 행동 문장으로 바꾸고, 평가 부담을 나눈다. 여섯 가지 수행 요소를 매 차시 교사 한 사람이 모두 관찰하는 방식은 지속하기 어렵다. 그래서 근거를 들어 의견을 제시하는지는 토의 차시에 교사가 관찰하고, 진행 상황 공유는 학생 자기점검표로, 피드백 반영은 중간 점검 뒤 동료평가로 확인하는 식으로 나눈다. 학습활동은 ‘동사’ 중심으로 나열한 뒤 문제 이해-탐색-분석-의사결정-산출-공유의 흐름으로 배열한다. 도구는 이미 있는 것을 찾아 쓰는 탐색 도구와 새로 만드는 개발 도구로 나누는데, AI 덕분에 도구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된 만큼 ‘무엇을 쓸까’보다 ‘이 활동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먼저 묻는다. 스캐폴딩은 학생이 혼자서는 어렵지만 도움을 받으면 해낼 수 있는 지점에 놓는 발판이다. 너무 많으면 학생의 사고를 대신하고 너무 적으면 포기하게 만들며, 학생이 해낼 수 있게 되는 만큼 지원을 줄여 가는 것까지가 스캐폴딩이다.

이 단계에서 AI는 설계한 수업을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는 파트너다. 평가를 실제로 시행했을 때 교실이 어떤 모습일지, 어디서 배움이 막힐지 그려 볼 수 있다. 다만 그 장면은 예측이므로 실제 반응은 실행 단계에서 다시 확인한다. 책은 목표와 평가와 활동을 잇는 틀로 GRASPS(목표, 역할, 대상, 상황, 결과물·수행, 기준)를 소개한다.

개발·실행

개발·실행은 종이 위의 계획을 교실 속 수업으로 옮기는 단계다. 자료를 각자 따로 만들고 수업을 혼자 치르면 협력은 마지막에 흩어진다. 학습활동과 스캐폴딩 설계안을 바탕으로 필요한 자료 목록을 만들고, 찾아 쓸 자료와 새로 만들 자료로 나누고, 새로 만들 자료는 공동 개발과 개별 개발로 나눠 담당자와 마감을 정한다. 완성한 자료는 동료가 학생 입장에서 처음부터 따라가며 막히는 지점을 찾는다(인지적 워크스루). 수업은 개별 실행이나 공동 실행 가운데 팀에 맞는 방식으로 하고, 영상·녹음·메모처럼 부담이 적은 방식으로 기록한다. 책의 표현으로는 “기록이 없으면 평가 단계에서 기억에 의존하게 되고, 기억은 인상만 남기고 장면을 잃는다.”

평가

평가에는 두 시선이 필요하다. 하나는 학생의 배움을, 다른 하나는 팀의 협력 과정을 본다. 학생 결과물과 형성평가 응답, 성찰일지는 각자 분석해 보고하지 않고 한자리에 놓고 같이 읽는다. 같은 학생의 마을 환경 문제 제안서도 수학 교사는 데이터 해석의 정확성, 사회 교사는 실현 가능성, 국어 교사는 주장과 근거의 설득력, 정보 교사는 분석 도구 선택을 짚으면 한 학생의 배움이 입체로 드러난다. 학생이 막힌 지점은 활동 난이도, 발문, 시간 배분 가운데 어디서 비롯됐는지 따지고, 지도안과 활동지와 평가 도구를 그 자리에서 고치며 무엇을 왜 바꿨는지 남긴다. 협력 과정 성찰에서는 처음 세운 비전과 역할, 규칙, 일정이 실제로 어떻게 지켜졌는지 비교하되, 원인은 개인보다 팀이 함께 고칠 수 있는 운영 방식에서 찾는다. AI는 흩어진 성찰 메모와 서술형 응답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짚는 데 쓰고, 어떤 패턴이 의미 있는지는 팀이 자료를 직접 보고 판단한다.

실천 워크시트 18장

부록 「협력적 수업설계 실천 워크시트」는 18개 세부활동마다 한 장씩, 활동 흐름의 단계와 원리 태그를 그대로 옮긴 기록지다. 각 장 상단에 활동 코드와 ‘팀 준비 1/5’처럼 단계 안의 순서가 적혀 있다.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에서 게시글 ‘함께 만드는 수업, 서로 깊어지는 배움’을 검색하면 내려받을 수 있다.

단계 워크시트에 남기는 것
팀 준비(5장) 나의 교육 비전 키워드(3~5개)와 공동 비전 확정문, 수업설계 방향 확정안, 이름·강점·희망 역할과 최종 역할 분담표, 팀 규칙 확정안(5개 내외), 개인별 제약 일정과 정기 회의 계획
분석(4장) 우리 팀의 주제 선정 기준, 교사별 주제 후보와 선정 주제 한 문장, 교과별 성취기준 분해와 재구조화 성취기준, 핵심 아이디어·탐구 질문·통합 수업목표
설계(5장) 평가 요소·시점·평가자·방법, 후보 문제 상황과 선정 이유, 차시별 학습활동과 담당 교과·예상 시간, 탐색 도구와 개발 도구, 활동별 예상 어려움과 지원 방법·제공 시점
개발·실행(2장) 교과·활동별 필요 자료, 공동 개발과 개별 개발의 담당자·마감, 학생 관점 검토 의견, 실행 방식(개별/공동)과 역할 분담
평가(2장) 목표에 잘 도달한 사례·자주 보인 어려움·예상 밖의 반응, 루브릭에 비춘 간극의 원인, 수정 전·후와 이유, 협력 과정 평가표(역할 분담의 공정성, 규칙의 실효성, 일정 관리, 의사소통, 의견 충돌 해결 방식)

세 팀의 실천

4장은 초·중·고 세 팀이 실제로 이 절차를 밟은 기록이다. 첫 모임의 망설임, 계획과 어긋난 장면, 그 뒤의 수정까지 함께 적혀 있다.

초등 3학년, 문화유산 탐정단

‘시너지 포스’라는 이름의 네 교사가 초등학교 3학년 4개 학급을 맡았다. 사회과 ‘우리 지역의 문화유산’을 중심에 두고 국어과를 통합했으며, 성북구 지역화 교재 『보물찾기』를 주자료로 썼다. 핵심 아이디어는 “문화유산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자료이다”, 탐구 질문은 “문화유산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요?”였다. 총 14차시(한 학급은 16차시) 가운데 1~11차시는 함께 설계해 한 교사가 네 학급에서 실행하고 담임 넷이 참관했고, 12~13차시는 학급별로 자율 설계했다.

첫 모임에서 한 교사가 “저는 실생활 문제 해결이 교육 내용의 중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심성 함양이 중심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꺼냈다. 침묵 끝에 오래 말이 없던 동료가 “맞아요”라고 답하면서 대화가 열렸다. 지식 중심이냐 활동 중심이냐는 방법의 차이였고,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을 키우고 싶다는 바람은 같다는 것을 확인한 뒤 “학생 스스로 읽고 질문하는 능동적인 배움”이라는 비전에 합의했다. 분석 단계에서는 성취기준의 ‘탐색’이라는 단어에서 탐정 콘셉트가 나왔고, 학생이 스스로 묻게 하려면 질문 만들기 자체를 가르쳐야 한다는 판단으로 국어과 성취기준을 끌어왔다. AI 리터러시 활동은 “생성형 AI는 아홉 번 맞는 말을 하면 한 번은 거짓말을 해요”라는 걱정에서 나왔다. AI가 그린 한양도성 그림을 실제 사진과 나란히 놓고 학생이 역사적 오류를 찾게 한 것이다.

학생 흥미도 조사(4점 척도)는 팀에게 불편한 결과를 보여 주었다.

활동 평균 매우 흥미로웠음
젭 퀴즈로 방탈출하며 정리하기 3.82 86%
디벗으로 만화 그리기 3.81 88%
인공지능 챗봇에게 질문하기 3.78 81%
인공지능이 잘못 그린 것 찾아내기 3.62 68%
성북동 테마여행 사이트 구경하기 3.49 58%
지도 위에 문화유산의 위치 표시하기 3.36 51%
문화유산이 나에게 해주는 말 상상하기 3.33 53%
책 읽으며 밑줄 긋고 질문 만들기 3.26 39%

흥미도가 높은 활동은 모두 디지털 도구를 쓰는 활동이었고, 비전의 핵심인 ‘책 읽으며 밑줄 긋고 질문 만들기’가 여덟 개 가운데 최하위였다. 팀은 학생들이 교사가 가장 바란 일을 가장 덜 즐긴 셈이라고 스스로 짚었다. 그렇다고 그 활동을 빼야 한다고 읽지는 않았다. 흥미도가 곧 배움의 깊이는 아니고(챗봇에게 미술관 휴관일을 묻던 학생도 있었다), 흥미가 낮은 활동일수록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한 교사는 “도구가 아니라 질문의 질이 수업을 결정한다”고 정리했다. 에필로그에서 토론 수업이 낯설던 교사는 평가 협의에서는 솔직한 말이 오갔는데 설계 단계에서는 왜 부딪히지 않았는지 되묻고, 다음에는 회의 끝에 “지금 말하지 않은 것이 있나요?”를 묻자고 적는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다는 것과 할 수 없다는 것은 다르다”는 문장으로 글을 맺는다.

중학교, 다양성이 살아나는 우리 반 공생 프로젝트

역사·한문·중국어·과학 교사 여섯이 모였다. 금요일에 커피를 앞에 두고 교육 이야기를 나누던 ‘금별다방’이 출발점이었다. 교과별 시수가 나뉜 중학교에서 융합수업은 쉽지 않아 처음에는 계기교육을 함께 짜며 절차부터 익히자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그러다 6월 말과 7월에 여러 학급에서 공동체 생활 문제가 불거지자 질문이 “우리 반이라는 공동체는 왜 원활하게 움직이지 않을까?”로 바뀌었다. 탐구 질문은 “우리 반이 하나의 몸이라면, 서로 다른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다. 학생들은 향약·두레·품앗이, 토루·사합원, 『예덕선생전』에서 공동체의 규칙과 역할을 살피고, 학급의 상태를 신체 기관계의 기능에 빗댄 ‘우리 반 문진표’로 진단한 뒤, 자신의 역할을 세포와 연결했다. 기본형은 2차시다.

이 팀의 기록에서 가장 큰 전환은 평가 단계에 있다. 책은 일부 학급의 사후 진단이 아직 예정 상태였으므로 역량이 몇 점 올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힌다. 실행에서 분명히 확인된 것은 효과 크기보다 적합성의 차이였다. 3학년에 맞는 자료가 1학년에게는 어려웠고, 교과 시간과 담임 시간은 같은 활동에도 다른 맥락을 만들었다. 외부 검토를 맡은 교사공동체 ‘별길배움’은 맥락을 모르는 교사에게 네 교과가 모두 들어간 2차시 수업은 너무 복잡할 수 있다고 피드백했다. 팀은 “우리가 만든 모든 것을 한 교사가 반드시 다 해야 할까?”라고 묻고, 완성형 수업을 골라 조합할 수 있는 모듈형으로 바꿨다. 학급 관계를 돌아보려면 역사·한문 모듈을, 과학적 비유가 필요하면 기관계·세포 모듈을 고르는 식이다. 한 역사 교사의 말처럼 “덜어낼수록 수업이 더 단순하고 선명해졌다.” 학생들에게 던진 “우리 반에서 나는 어떤 세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서로 다른 기능을 맡았던 여섯 교사에게도 그대로 돌아왔다.

고등학교, 세상의 모든 목소리

국어·영어·음악 교사 세 명이 고등학교 1·2학년 무학년제 학생 27명과 15차시(사전활동 3차시, 본 수업 12차시를 2일 집중 운영)를 진행했다. 『어린 왕자』와 경상도 방언판 『애린 왕자』, 전라도 방언판 『에린 왕자』,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을 함께 읽고, Dialect Archive의 실제 음성을 듣고, 발표와 공연으로 다양성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수업이다. 처음 비전은 ‘사투리는 틀린 말이 아니라 다른 말이라는 관점을 기른다’였는데, 다시 읽어 보니 여전히 어떤 언어를 중심에 두고 다른 언어를 변호하는 방어적인 문장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를 이해하는 경험은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든다”로 초점을 고쳤다.

이 팀의 설계 단계는 AI 산출물을 그대로 채택하지 않은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분석 단계에서 AI가 세 교과의 공통 요소를 하나로 합치려 했을 때도 교사들은 따르지 않았다. “공통점을 하나로 합치면 깔끔하긴 한데… 그럼 왜 세 과목이 같이 하는 거예요?” AI 음성으로 경상도와 전라도 억양을 틀어 보았지만 “억양이 흉내만 내는 것 같아요”라는 반응에 출신 지역 교사가 직접 낭독했다. AI 음악 생성 도구는 “AI가 다 만들어 주면 학생들이 선택하고 판단할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접었다. 학생은 질문을 먼저 만들어 발표한 뒤에야 AI와 대화를 시작했고, 텍스트를 읽고 목소리를 듣고 토론하는 동안에는 AI를 쓰지 않았다. 학생 기록장 Every Voice Journal에는 ChatGPT가 말한 것, 우리가 생각한 것, 우리가 수정한 것을 나란히 적는 칸이 있다. 책은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AI 활용 결정이 무엇을 쓸지보다 무엇을 쓰지 않을지에 가까웠다고 정리한다. 영어 교사는 에필로그에서 AI가 역할과 역할 사이의 ‘회색지대’를 메워 주었지만, 어떤 질문을 남기고 어떤 활동을 버릴지는 세 사람이 판단했다고 쓴다.

교사들이 만든 AI 에이전트

5장은 현장 교사들이 개발한 협력적 수업설계 AI 에이전트를 소개한다. 출발점은 앞서 본 세 가지 어려움이다.

어려움 현장 장면 프로토타입의 대응
훈련 경험 부족 연수는 받았는데 어디부터 시작할지 모른다. 자료는 쌓였는데 꿰지 못한다 전체 흐름과 현재 위치 안내, 단계별 체크리스트, 수업 시수와 학생 상황을 반영한 설계 지원
시간 부족 각자 성취기준을 출력해 와 설명하다 회의가 끝나고, 불참자 브리핑에 시간을 쓴다 융합 주제 후보 5~7개와 이유 제시, 교과 간 성취기준 연결 시각화, 논의를 ‘합의된 사항 / 미결 사항 / 다음 할 일’로 요약
협력 문화 미형성 동료에게 함께하자는 말을 꺼내기 조심스럽고, 작년 자료는 떠난 교사의 컴퓨터에만 남는다 협력 과정의 기록을 학교 자산으로 축적, 동료에게 전할 보고서 제공

책은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를 구분한다. 생성형 AI가 입력에 즉시 답하는 데 강하다면, 에이전트는 목표를 향해 인식, 추론, 행동을 되풀이하며 스스로 결과를 점검하고 고친다. 세 프로토타입은 2022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 데이터를 내장하고, 다섯 단계와 18개 절차를 안내하며, 단계가 진행될 때마다 내용을 보고서에 쌓아 PDF·DOCX로 내보낸다. 학교급별 특징은 이렇다.

학교급 맥락 주요 기능
초등 담임 한 명이 여러 교과를 통합 주제를 단서로 교과별 핵심아이디어 후보를 찾고, 확정하면 성취기준과 내용체계 3범주를 원문 그대로 분석표에 채움. 교과 간 연결을 마인드맵으로 시각화. 팀 채팅 중에는 AI 모델을 아예 호출하지 않음
중학교 교과 전담 체제 교사가 자기 교과 성취기준을 직접 고르면 AI가 3범주 분석과 재구조화를 하고 타 교과의 연결 가능한 성취기준을 제안. 참여 교사 전원의 답을 모으는 ‘의견 묻기’, 버전 관리, 팀 채팅과 AI 채팅 탭 분리
고등학교 고교학점제로 선택과목 성취기준이 많음 의미가 비슷한 성취기준끼리 가까이 모이는 3D 교육과정 그래프와 융합 주제 추천. 교과서 PDF, 학습지, 수업 사진을 올리면 자료 성격에 맞춰 요약하고 “@파일명”으로 불러와 근거와 함께 인용

초등 프로토타입의 팀 채팅 설계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이 구간에서는 AI가 말을 아끼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모델을 아예 호출하지 않는다. 과도한 질문 피로와 AI가 교사 간 대화를 끊는 현상을 막고, 대화의 주도권을 교사에게 두려는 선택이다. 중학교 프로토타입이 채팅을 두 탭으로 나눈 것도 같은 생각에서 나왔다. 지금 필요한 것이 동료와의 협의인지 에이전트의 도움인지를 교사가 고른다.

에이전트를 써 본 한 고등학교 교사는 두 가지를 꼽았다. 융합 수업으로 들어가는 진입 장벽이 낮아졌고, 회색 지대의 일을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협업에서 가장 어려운 건 각자의 몫이 아니라 그 중간에 낀 일입니다. 남에게 부탁하기는 미안하고, 내가 하자니 결국 다 내 일이 될 것 같은 그 일.” 자료 정리, 대화록 작성, 학습지 초안을 AI가 맡자 그 부담이 사라졌고, 그는 이를 “AI가 교사의 일을 대신한 경험이 아니라 교사들이 서로 협업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경험”이라고 말한다.

세 프로토타입은 소스 코드가 공개되어 있다. 초등은 togetherTR, 중학교는 teaching-designer, 고등학교는 curriculum-weaver다. 부록 2는 Claude Code나 Codex 같은 코딩 AI 에이전트에게 저장소 주소를 알려 주고 “우리 학교는 한 차시가 45분이야. 차시 배분 부분을 45분 기준으로 바꿔줘”처럼 구체적으로 요청해 학교에 맞게 고치는 방법을 안내한다. 유료 구독 계정이 필요하고, “A를 더 교육적으로 개선해줘”보다 “A를 B로 바꿔줘”가 원하는 결과에 가깝다. 책은 에이전트를 우리 학교에 맞게 고치려고 동료와 나누는 대화 자체가 협력적 수업설계의 실천이라고 본다.

협력을 이어 가려면

6장은 지속의 조건을 두 층위로 나눈다. 먼저 협력을 제안하는 리더 교사의 준비다. 책이 그리는 리더 교사는 동료가 함께 생각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고, 모든 답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 자기 준비: 첫 모임에서 주제와 방향을 먼저 제시하고 “이대로 역할을 나누어 진행해 봅시다”라고 하면 동료는 정해진 계획을 수행하는 자리에 머문다. “우리 학생들이 이 주제에서 어떤 배움을 경험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으면 동료의 경험이 처음부터 설계에 들어온다.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같이 살펴보면 좋겠습니다”는 준비 부족의 고백이 아니라 분위기를 여는 말이다.
  • 관계 준비: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전에 다른 생각을 말해도 괜찮은 분위기부터 만든다. 다른 의견에는 반박보다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를 조금 더 들려주시겠어요?”가 먼저다.
  • 절차 준비: 다섯 단계와 그 안에서 반복되는 탐색-확장-조정-정리의 흐름을 공유한다. 모임을 시작할 때 지금 어느 단계이고 오늘 어디까지 결정할지만 알려도 충분하다. AI 에이전트에게 단계 안내와 의견 정리는 맡길 수 있지만, 방향을 정하거나 결론을 대신 내리게 해서는 안 된다.
  • 도구 준비: 포스트잇, 수업설계카드, 공동 문서와 함께 브레인스토밍, 평가 행렬법, 개념도 그리기 같은 사고 기법을 흐름에 맞춰 쓴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라는 막연한 질문으로는 몇몇만 말하게 된다.

다음은 학교의 몫이다. 책은 협력이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교사의 열정이나 의지 부족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협력 시간은 교사 개인이 짜내게 두지 말고 학교의 공식 수업 준비 시간으로 인정하고, 교과협의회나 학년협의회와 연결하되 그 시간에 다른 회의와 행정 업무가 겹치지 않게 보장해야 한다. 교실도 교무실도 아닌 ‘제3의 공간’으로 회의실이나 도서관 한쪽을 정해 두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교구 제작과 전문가 검토, 다른 학교 방문에 쓸 연구비와 교사들이 편하게 만날 협의회비도 필요하다. 협력이 ‘끼리끼리 문화’로 비치지 않도록 과정과 결과를 나누고, 모든 교사에게 참여를 요구하는 대신 자료 사용이나 의견 제시처럼 부담이 적은 참여 방식을 열어 둔다. 마지막으로 학교교육계획과 학사 일정에 반영하고, 수업안과 협의 기록과 성찰을 학교의 지식으로 남긴다. 6장 끝에는 리더 교사 준비 10개 항목, 학교 기반 13개 항목의 점검표가 실려 있다.

가이드북은 스스로를 완성된 수업의 정답을 알려 주는 책이 아니라 교사들이 다시 함께 수업을 이야기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소개한다. 모든 조건을 갖춘 뒤에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도 말한다. 책이 제안하는 첫마디는 이것이다. “이 수업, 같이 한번 생각해 볼까요?”

출처

  • 서울특별시교육청 (2026). 『함께 만드는 수업, 서로 깊어지는 배움: 협력적 수업설계 가이드북 with AI』(집필 이동국 외). 서울특별시교육청 창의미래교육과. ISBN 979-11-24645-00-0.
  • 서울특별시교육청 (2026). 「협력적 수업설계 실천 워크시트」(위 가이드북 부록 1). 서울특별시교육청 창의미래교육과.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