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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끄는 24분이 지키는 것
지난 9월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에서, EdTech Arena 세션의 교사 실행 사례로 짧은 발표를 했습니다. 세션의 주제는 ‘교사는 무엇을 맡고, AI에게 무엇을 맡길 것인가’였습니다. 그 물음에 제 수업으로 답해 보려 했고, 그날 나눈 이야기를 여기에 정리해 둡니다. 그날의 발표 교안은 글 끝에서 내려받으실 수 있게 두었습니다.
트로이 목마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겉으로는 거대한 목마 한 마리지만, 그 안에는 병사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성 안에 들이는 일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알려면 겉모습이 아니라 그 이면, 곧 본질을 봐야 했습니다.
수업에 도구를 들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도구를 쓰는 동안 아이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답이 빨리 완성되는지와 아이가 그 답을 이해하고 있는지는 따로 떼어 살펴야 합니다. 도구의 이면, 그러니까 본질은 아이 안에서 일어나는 배움입니다. 분수의 뺄셈이라면 왜 그렇게 계산하는지 스스로 설명하는 힘이겠지요. 그 배움을 알아보고 도구의 역할을 판단해 제자리에 놓는 것, 저는 그것이 교사의 전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빼기, 더하기, 곱하기
그렇다면 AI는 언제 쓰면 좋을까요? 그레그 니마이어 교수는 이 물음을 빼기, 더하기, 곱하기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빼기, 마이너스 AI입니다. 아이가 직접 경험하고 생각할 시간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날 소개한 수학 수업에서 가운데 20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더하기, 플러스 AI입니다. 사람이 판단의 키를 쥔 채 AI와 질문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탐색의 폭을 넓힙니다.
곱하기, 타임스 AI는 AI가 지식을 만들고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다룹니다. 저는 이것을 교실에서 ‘AI의 답과 내 생각은 어떤 관계인가’라는 물음으로 옮겨 보았습니다.
다섯 가지 질문
서울특별시교육청 가이드북 『성장하는 교사, 다섯 가지 질문』을 따라가면 AI 디지털 수업을 한결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는 이러했습니다.
- 첫째, 무엇이 중요할까요? 아이가 자기 말로 이유를 설명하는 배움이었습니다.
- 둘째,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그 배움이 일어날 40분의 흐름을 살폈습니다.
- 셋째, 어떻게 설계할까요? 도구의 도움을 받을 자리와 직접 해 볼 자리를 나눴습니다.
- 넷째, 어떻게 실천할까요? 아이들이 쓴 문장을 보고 준비한 활동을 바꿨습니다.
- 다섯째, 어떻게 지속할까요? 네 줄 기록을 남기고 다음 반의 수업을 고쳤습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이 다섯 질문을 각자의 수업에 대입해 보실 수 있습니다.
교체가 아니라 축적
송미나 수석님께서 일전에 교육 정책의 두 갈래 길에 대해 글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 AI 활용을 넓히자는 방향이 제시되었다고 해 보겠습니다. 이것을 ‘이제 종이와 대화 중심의 수업은 낡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교사는 그동안 잘해 오던 활동까지 갈아엎어야 한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교체’는 이런 모습입니다.
이날 함께 본 2024년의 제 수학 수업은 일부러 AI 디지털 교육자료(구 AIDT) 활용 수업 가운데서 골랐습니다. 활동 2와 활동 3에서는 AI 디지털 도구를 20분 동안 쓰지 않았습니다. 2년이 지난 2026년 9월, 제 과학 수업에서도 이 판단과 철학은 그대로였습니다. AIDT 정책이 폐기된 뒤였는데도, 활동 2와 활동 3에서 AI 디지털 도구를 오히려 4분 더 늘려 24분 동안 쓰지 않았습니다.
정책이 새 방향을 제시할 때에도,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고칠지는 정치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아이의 배움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의 수업은 연속적이고 경험적이어서, 정책의 언어로는 ‘교체’보다 ‘축적’이 어울립니다. 도구가 바뀌고 정책이 바뀌어도, 아이를 보고 수업을 고쳐 가는 경험의 지혜는 계속 쌓여 가기를 바랍니다. 수업 설계 안에 담긴 그 판단과 성찰이야말로 교사 전문성의 본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포럼에서 받은 세 가지 질문
발표에 앞서 포럼에서 세 가지 질문을 미리 받았습니다. 각각에 이렇게 답을 준비했습니다.
오답을 꺼내도 안전하다는 믿음
성찰을 단순한 다짐이 아닌 다음 수업을 위한 데이터로 활용하고, 신뢰(T)가 0이면 아이들이 기계의 정답 뒤로 숨게 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AI 디지털 도구의 비중이 점차 커지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오답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계가 아닌 스스로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현장 밀착형 신뢰 구축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신뢰는 ‘틀려도 괜찮다’는 말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학생이 서툰 생각을 내놓았을 때 교사가 실제로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쌓여야 합니다. 발표에서 한 학생이 ‘AI한테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오잖아요?’라고 물었을 때, 제가 궁금한 것은 기계의 정답이 아니라 지금 그 학생의 생각이라고 답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교실에서는 순서로 신뢰의 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먼저 AI를 켜기 전에 모든 학생이 자기 예상이나 풀이를 짧게 남깁니다. 다음으로 짝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며 생각을 바꿀 기회를 갖습니다. 마지막에 AI나 자료를 열어 비교합니다. 이 순서라야 AI의 답이 학생의 생각을 대신하지 않고, 학생이 자기 생각을 점검하는 자료가 됩니다. 공개 발언이 부담스러운 학생에게는 작은 화이트보드나 익명 메모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교사의 피드백도 이 신뢰를 좌우합니다. 오답을 곧바로 판정하기보다 ‘어떤 근거로 그렇게 생각했니?’, ‘이 자료를 보면 무엇을 다시 생각해 볼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6학년 과학에서 ‘여름에는 지구가 태양에 가까워서 덥다’는 생각이 나왔을 때에도,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1월이 근일점이라는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처음 그렇게 쓴 아홉 명 가운데 여섯 명이 스스로 문장을 고쳤고, 남은 세 명의 생각까지 기록해 다음 수업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니마이어는 배움의 통찰을 질문(Q)·신뢰(T)·지식(K)의 곱으로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점수를 매기는 공식이라기보다, 좋은 자료(지식)를 주는 것만큼 질문과 신뢰도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료를 주어도, 틀린 생각을 꺼내도 함께 살펴봐 준다는 믿음이 없으면 아이는 안전해 보이는 기계의 정답 뒤로 숨습니다. 신뢰는 오답을 그냥 허용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오답을 다음 배움에 실제로 써 보는 경험에서 생깁니다.
AX의 방향을 교실 한 차시로
학교에서 AX 시대에 실행 가능한 교육 방향, 교사들의 공감대 형성과 교실 수업으로의 연결 방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학교에서 AX를 시작할 때 ‘어떤 도구를 전 교실에 넣을까’보다 ‘우리 학생에게 꼭 일어나야 할 배움은 무엇인가’를 먼저 합의하면 좋겠습니다. 그다음 한 차시를 펼쳐 놓고 교사들이 함께 표시해 봅니다. 학생이 직접 설명하고 판단해야 하니 AI를 뺄 자리(−), 반복과 자료 정리의 부담을 덜어 탐구할 시간을 버는 더할 자리(+), AI의 답과 내 생각의 관계를 되물어 배움을 넓히는 곱할 자리(×)를 나누는 방식입니다. 홍콩 두 학교의 사례 연구도 ‘AI 통합이 전면적일 필요는 없다’는 결론으로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공감대는 큰 구호보다 작은 공동 실험에서 생깁니다. 같은 학년이나 교과의 교사 두세 명이 한 차시에서 한 활동만 바꿔 봅니다. 수업 전에 ‘무엇을 관찰할지’를 정하고, 수업 직후에는 본 것과 버린 것과 바꾼 것과 그 결과를 네 줄로 남깁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도구를 몇 번 썼는지보다 학생의 설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오개념이 남았는지를 나눕니다. 실제로 저는 1반의 네 줄 기록을 근거로 이틀 뒤 2반의 설계를 바꿨습니다. 그런 기록이 쌓이면 한 교사의 경험이 다음 설계의 근거가 되어 옆 반과 다음 해로 이어집니다.
학교 차원에서는 교사에게 도구 활용 실적을 요구하기보다, 함께 설계할 시간과 안전하게 실험할 여지를 보장해야 합니다. 학생의 개인정보와 접근성도 같이 점검해야 합니다. 제 블로그의 공교육 AX 전략 핸드북에서 거버넌스와 교원 역량, 교육과정, 평가, 윤리를 함께 다룬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방향을 한마디로 하면 교체보다 축적입니다. 라디오에 카메라가 들어왔어도 진행자들의 대화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AX도 기존 수업을 한꺼번에 갈아치우는 일이 아닙니다. 교사가 쌓아 온 교육적 판단 위에 필요한 기술을 얹어 가는 과정입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가이드북 『성장하는 교사, 다섯 가지 질문』의 다섯 질문은 그 판단을 한 차시로 옮기는 데 도움이 됩니다.
도구를 끌 자리를 고르는 기준
수업의 핵심 과정에서 건강한 어려움(생산적 마찰)을 남겨 두기 위해 전략적으로 AI를 끄는 Minus AI의 중요성을 현장 사례와 함께 강조하셨습니다. 고등학교 환경이나 심화된 교과 커리큘럼을 설계할 때,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인지적 도전을 보장하기 위해 도구를 차단해야 하는 배움의 지점을 교사들이 체계적으로 판별해 낼 수 있는 기준이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AI가 이 일을 대신하면 학생 안에 어떤 능력이 생길 기회를 잃는가’를 먼저 묻습니다. 그 일이 이번 단원의 핵심 목표라면, 적어도 첫 시도는 학생에게 남겨 두어야 합니다. 가설 세우기, 수학적 추론의 출발점 찾기, 사료의 신뢰성 판단, 작품에 대한 첫 해석, 실험 결과를 자기 언어로 설명하기가 그렇습니다. 반대로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지나치게 들어 정작 핵심 탐구를 못 한다면, 그 부분에는 AI를 더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나 심화 과정일수록 도구가 대신할 표면, 그러니까 검색과 계산과 정리가 넓어지므로 뺄 자리는 더 또렷하게 골라야 합니다.
판별할 때는 세 가지를 확인합니다. 첫째, 지금 어려운 그 일이 학습 목표 자체인지. 둘째, 학생이 혼자 시도한 흔적이 있는지. 그 흔적이 있어야 이후의 피드백이 의미가 있습니다. 셋째, 이 어려움이 사고를 밀어 올리는 수준인지, 아니면 필요한 기초나 지원이 없어 그냥 막혀 있는지. 앞의 두 가지가 ‘그렇다’면 잠시 AI를 끄고, 세 번째에서 학생이 막혀 있다면 정답을 바로 주기보다 예시나 질문, 짝의 설명 같은 발판을 줍니다. 학습과학의 말로 하면, 남겨 둘 만한 생산적 마찰과 도구로 덜어 줘야 할 파괴적 마찰을 가르는 일입니다. 건강한 어려움과 방치는 다릅니다.
예컨대 고등학교 과학에서 실험 데이터를 해석한다면, 학생이 먼저 그래프의 이상한 점을 찾고 설명 가설을 적게 합니다. 이후 AI로 대안 설명을 받아 비교하되, 어떤 설명을 채택할지는 근거를 들어 학생이 정하게 합니다. 국어나 역사에서도 원문과 사료에 대한 첫 해석은 학생에게 남기고, AI는 반론을 내놓거나 빠진 관점을 찾는 단계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Minus AI의 자리는 몇 분 동안 기기를 금지하는 고정 규칙이 아닙니다. 배움의 핵심 판단을 학생이 먼저 수행하도록 순서를 설계하는 원칙입니다.
발표 교안을 나눕니다
발표를 들어 주시고 좋은 질문을 건네주신 선생님들께 고맙습니다. 그날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 두었고, 발표 교안도 아래에 두었습니다. 정답을 담은 자료는 아닙니다. 각자의 교실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고칠지 함께 고민하는 출발점으로 쓰이면 좋겠습니다. 자료를 활용하실 때는 출처(닷커넥터 김진관)를 밝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