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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울 앞에서 문득 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남자의 인생은 나이가 아닌 단계로 나뉘며, 그 단계는 나이순으로 오지 않는다. 심리학 연구는 놀랍도록 유사한 인생의 굴곡을 밝힌다.

심리학자 대니얼 레빈슨은 공장 노동자부터 회사 임원, 소설가, 생물학자까지 직업도 형편도 다른 성인 남성의 인생을 10년 넘게 추적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에는 놀랄 만큼 비슷한 굴곡이 있었고, 그는 이를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이라는 책으로 정리했다. 인생은 안정된 시기와 흔들리는 시기가 번갈아 찾아오며, 흔들리는 시기를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다음 시기를 결정한다.

오늘 이야기할 남자의 인생은 총 일곱 단계이다. 대다수 남성은 이 중 네 번째 단계에서 멈춘다. 현재 자신이 어느 단계에 서 있는지 헤아려보면, 예상과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남자 인생 일곱 단계를 설명하는 영상 화면

다음 표는 남자 인생의 일곱 단계를 요약한다.

단계 명칭 핵심 내용 및 과제 진단
1 증명 사회가 제시한 목록에서 선택하고 증명하는 시기. ‘나의 꿈’과 ‘남의 꿈’을 구분하지 못한다. “나는 뭘 잘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입에서 나온다.
2 축적 통장 잔고, 직함, 아파트 평수 등 숫자로 성과를 쌓는 시기. 관계는 후순위로 미룬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3 유지 쌓아 올린 것을 지키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자기 가치를 외적 조건에 걸고, 남과 위로만 비교한다. 남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속으로 축하보다 계산부터 한다.
4 균열 몸의 변화, 부모의 노화, 자녀의 성장, 후배의 등장 등 외부와 내부의 균열을 느낀다. 대부분 이 단계에서 멈춘다. “요즘 왜 이러지?”라는 말이 자주 나오지만, 무엇을 바꿔야 할지 모른다.
5 감산 관계와 목표에서 ‘빼기’를 시작한다. 남은 시간이 유한함을 느끼며 관계의 깊이를 고르고, 놓을 줄 아는 힘을 배운다. 만나면 편한 사람이 세 명이 안 되거나, 내가 고른 세 명이 아니다.
6 물려줌 명함이 없어져도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지식이나 경험 대신 ‘태도’를 물려준다. 가르치기보다 듣는다. 누가 조언을 구할 때 가르치기 대신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7 통합 자신의 인생을 후회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다시 살 수 없음에 절망하기보다 지금의 삶을 긍정한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보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1단계 증명

남자는 20대 무렵 “너 뭐 할 거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학교, 군대, 첫 직장을 고르지만, 대부분은 부모나 사회가 제시한 목록에서 선택한다. 심리학자 제임스 마르시아는 이러한 상태를 정체성 유실이라고 명명한다. 고민 없이 타인의 답을 자기 것으로 삼는 상태를 말한다. 메뉴판을 보지 않고 남이 시키는 것을 따라 주문하고는 그것이 자신의 취향이라 믿는 것과 같다. 이 상태는 당장 문제가 없어 보이나, 한참 뒤 그것이 자기 입맛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때 문제가 된다.

레빈슨은 이 시기 남성들이 저마다 을 품는다고 밝혔다. 거창한 목표가 아닌 ‘언젠가 이런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그림이다. 중요한 점은 그 꿈이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구분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다. “나는 뭘 잘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면, 나이가 스무 살이든 쉰 살이든 1단계에 머문다.

2단계 축적

30대가 넘으면 남자는 더 이상 “뭘 할 거냐”는 질문을 받지 않는다. 대신 “결혼은 언제 하냐, 집은 샀냐, 직급은 뭐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증명의 시기가 끝나고 쌓는 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통장 잔고, 명함, 직함, 아파트 평수 등 남자의 성적표는 숫자로 기록된다. 주말에 쉬면 불안해하고, 대출이자, 자녀 양육비, 승진 등 끊임없이 무언가를 쌓으려 한다.

레빈슨은 이 시기를 정착기라고 불렀다. 사다리에 발을 올리고 위만 보느라 옆을 볼 여유도, 아래를 볼 용기도 없는 시기이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이 나이대의 과제를 친밀감과 고립 사이의 갈림길로 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친밀감을 뒤로 미루며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이라 생각한다. 배우자와의 대화는 짧아지고, 친구와의 약속은 미루며, 부모님 전화는 나중에 받는다. 관계는 저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쓰지 않으면 줄어든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면 2단계에 해당한다.

3단계 유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면 쌓을 만큼 쌓았다. 집도 있고, 직위도 있고, 가정도 있다. 하지만 편하지는 않다. 쌓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 시기이다. 후배의 추격, 동기의 앞선 승진, 모임에서 들리는 집값 이야기 앞에서 위축된다. 남의 성공담에는 축하보다 “저 사람은 몇 살이지? 연봉은 얼마지? 집은 언제 올랐지?”와 같은 계산이 먼저 나온다.

이 시기 남자의 에너지는 대부분 지키는 데 소모된다. 새로운 시작은 두렵다. 여기에 두 가지 심리학 개념이 겹쳐진다. 하나는 제니퍼 크로커가 말한 자기 가치 조건화다. 자신의 가치를 연봉, 직급, 집과 같은 특정 조건에 거는 것이다. 이 조건이 흔들리면 자신 전체가 흔들린다. 다른 하나는 레온 페스팅거의 사회 비교다.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알기 위해 남과 비교하는데, 이 단계에서는 비교 대상을 점점 위로만 잡는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잘된 사람만 보이므로 비교할수록 초라해진다. “이대로면 괜찮다”는 말은 만족이 아닌 방어이다. 더 오를 힘은 없고 내려오는 것은 무섭기에 현 위치에 못을 박으려 한다. 남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속으로 계산부터 하고 있다면 3단계이다.

4단계 균열

대부분의 남성이 멈추는 곳이 4단계이다. 40대 중반, 겉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뱃살, 건강 검진 결과지의 빨간 글씨, 아버지 병실의 보호자 침대와 같은 균열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이 남자는 위로는 늙어가는 부모, 아래로는 돈 들어갈 일만 남은 자녀, 옆으로는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후배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다.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지만, 아무도 자신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신분석가 엘리엇 자크는 1965년 예술가와 작곡가 300여 명의 생애를 연구하며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사이에 작업 방식이 급격히 바뀌거나 창작이 멈추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이 시기에 붙인 이름이 중년의 위기다. 지금도 쓰는 그 말이 그때 처음 나왔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는 132개국 데이터를 모아 삶의 만족도가 젊을 때 높고 중년에 바닥을 치며 나이가 들면 다시 올라가는 U자형 곡선을 그린다고 밝혔다. 그 바닥은 잘 사는 나라든 못 사는 나라든 47~48세였다. 몸도 거든다. 미국 볼티모어 노화 종단 연구가 수십 년에 걸쳐 확인한 대로, 남성 호르몬은 30세 이후 해마다 약 1%씩 줄어 40대 중반이면 이미 15% 가까이 빠져 있다. 의욕이 없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것은 게을러진 것이 아니라 몸의 연료가 실제로 줄어드는 현상이다.

대부분의 남성이 이 단계에서 멈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남자가 배운 무기는 모두 ‘더하기’였다. 증명하고, 쌓고, 지키는 모두 더하는 동작이다. 이 무기는 지금까지 잘 통했지만, 5단계부터 필요한 것은 그 반대인 ‘빼기’이다. ‘더하기’만 배운 사람은 ‘빼기’를 실패로 느낀다. 줄어드는 것은 지는 것이고, 놓는 것은 포기하는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4단계에서 균열이 오면 더 세게 ‘더하려’ 든다.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고, 차를 바꾸고, 이직을 알아보고,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등 모두 ‘더하기’ 행동이다. 흔들리는 기둥에 무거운 것을 더 얹는 것과 같다. 칼 융은 『인생의 단계』에서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으로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아침에 진리였던 것이 저녁에는 거짓이 된다”고 썼다. 아침에는 쌓는 것이 맞았지만, 오후에는 그게 틀린 방법이다.

4단계는 위기가 아니다.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이다. 그 신호를 위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만 갇히고, 신호로 읽는 사람은 지나간다. “요즘 왜 이러지?”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정작 무엇을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면 4단계에 있다. 그 자리에 오래 있었다면 ‘더하기’로 빠져나오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5단계 감산

50대가 넘으면 휴대폰 연락처는 그대로지만 전화 오는 사람은 줄어들고 술자리는 줄며 경조사가 늘어난다. 결혼식보다 장례식이 많아지는 나이가 된다. 처음에는 쓸쓸하지만, 어느 순간 이상하게 홀가분해진다.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은 이 변화를 사회정서적 선택 이론으로 설명했다. 남은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 사람은 관계의 수를 줄이고 깊이를 선택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보다 아는 사람과 오래 앉아 있기를 택한다. 이는 쇠퇴가 아닌 선택이다.

목표도 마찬가지이다. 심리학자 카르스텐 브로슈는 안 되는 목표를 놓을 줄 아는 사람들을 연구했다. 결과는 놓지 못하는 사람보다 우울 지표가 낮고 건강 지표가 좋았다. 붙잡는 것이 힘이 아니라 놓는 것이 힘이다. 하지만 남성에게는 함정이 하나 있다. 심리학자 니오베 웨이는 10대 남자아이들을 추적하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친구의 유무를 물었다. 14~15세에는 있다고 답하지만 17~18세가 되면 없다고 답한다. 남자는 어른이 되기 전에 그런 친구를 잃는 법을 먼저 배우고, 다시 만드는 법은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감산 단계에서 남자는 자신이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만 갖게 되기 쉽다. 내가 빼면 정리이지만 남이 빼면 소외이다. 이 단계의 과제는 딱 하나다. 내가 먼저 빼는 것. 놓을 목표를 내가 정하고, 남길 사람을 내가 고르는 것이다. 만나면 편한 사람이 세 명이 안 된다면 5단계를 지나지 않았다. 세 명이 있고 그들이 내가 고른 세 명이라면 5단계를 지나온 것이다.

6단계 물려줌

60세 전후, 회사를 나왔거나 나올 준비를 한다. 명함이 사라지자 30년 넘게 자신을 설명해주던 종이 한 장이 없어진다. 처음에는 누가 ‘뭐 하시냐’고 물으면 대답이 막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명함이 없는데도 누군가 여전히 이 남자를 찾아온다. 회사 후배, 다 큰 아들, 동네 젊은 사장 등이다.

이 남자는 처음에는 실수한다. 가르치려 든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고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그냥 듣기만 해본다. 다 듣고 나서 “나도 그때 그랬어”라고 한마디만 한다. 그러면 다음 주에 또 찾아온다. 에릭슨은 이 시기의 과제를 생성이라고 불렀다. 다음 세대에 무언가를 남기려는 마음이다. 반대편에는 아무것도 흘려보내지 못하고 자신에게만 갇히는 침체가 있다. 하버드 대학은 1938년부터 남성 수백 명의 인생을 추적한 하버드 성인발달연구를 진행 중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인 발달 연구다. 이 연구를 수십 년간 이끈 조지 베일런트는 50대에 생성을 이뤄낸 남자들이 그렇지 못한 남자들보다 70대를 즐겁게 보낼 확률이 세 배 높았다고 보고했다. 물려준다는 것은 재산이 아니다. 태도이다. 어떻게 실패했는지, 어떻게 버텼는지, 어디서 틀렸는지. 3단계에서 필사적으로 숨겼던 것을 6단계에서는 연다. 지키던 것을 여는 것이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2단계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된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것은 6단계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기대고, 자신은 그것을 받아줄 수 있게 될 때 가능하다. 누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그때 가르치는 대신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6단계에 있다.

7단계 통합

다시 거울 앞에 선다. 새벽 세면대 불빛 아래, 거울 속 아버지를 본다. 이번에는 놀라지 않는다. 한참을 보고 생각한다. ‘그래, 그 사람도 이 얼굴로 이 나이를 지나갔겠구나. 이 눈으로 아침을 맞았겠구나.’ 그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말이 없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에릭슨이 말한 인생의 마지막 과제는 자아 통합이다. 반대편에는 절망이 있다. 통합이란 자신의 인생을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회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후회까지 자신의 것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잘못 고른 길, 미뤄둔 사람, 놓친 시간, 이 모든 것을 포함하여 한 권으로 묶는 것이다. 절망은 반대이다. “다시 살 수 있다면 다르게 살 텐데”라는 문장에 갇히는 것이다. 다시 살 수는 없기에 그 문장은 출구가 없다. 통합은 잘 산 사람의 특권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쓰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의 태도이다. 대단한 인생을 산 사람도 7단계에 이르지 못하기도 하고, 평범하게 산 사람도 조용히 7단계에 서 있기도 한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보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면 7단계에 있다.

4단계에서 5단계로 가는 유일한 길

남자의 일곱 단계는 증명, 축적, 유지, 균열, 감산, 물려줌, 통합이다. 이 단계들은 나이순이 아니다. 60세인데 아직 3단계에서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고, 40세인데 이미 6단계에서 후배 얘기를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나이는 몸이 정하지만, 단계는 방향이 정한다.

4단계에서 멈춘 사람은 나쁘거나 못난 것이 아니다. 그저 ‘더하기’ 밖에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그 배운 대로 살았던 것이다. 5단계로 넘어가는 문은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빼기’이다. 연락처 하나든, 안 되는 목표 하나든, 지키느라 무거워진 자존심 하나든, 이번 주에 안 되는 것을 하나 놓는 것이 4단계에서 5단계로 넘어가는 유일한 동작이다. 거창할 필요 없다. 하나면 충분하다.

행동경제학의 시선으로 보면

4단계에서 5단계로 나아갈 때 ‘빼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현상은 행동경제학의 손실 회피(Loss Aversion)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인간은 이득보다 손실을 훨씬 강하게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4단계 남성은 무언가를 놓는 행위를 ‘잃는 것’으로 받아들여 고통스러워하고 거부한다. ‘더하기’가 익숙한 전략이었기에, 바꿔서 얻을 이득보다 기존의 것을 내려놓는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 현상 유지에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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