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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켜기가 참여가 될 때, HyFlex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

1. 연구의 목적

(1) 한 교실에 세 종류의 학생이 동시에 있는 장면에서 출발함. 교실에 앉은 학생, 화상으로 접속한 학생, 나중에 녹화를 볼 학생임. 교사는 셋을 한꺼번에 상대함. 앞자리와 눈을 맞추면서,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리고, 뒤늦게 볼 학생도 알아듣도록 말의 순서를 다시 짬. 이것이 HyFlex(하이브리드 유연 학습)의 평범한 하루임.

(2) 기존 연구는 주로 세 가지를 물었음. 기술을 얼마나 도입했는지, 학생이 만족했는지, 수업을 어떻게 설계할지임. 이 연구는 질문을 바꿈. 세 화면을 동시에 관리하는 그 일 자체가 교사와 학생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물음.

(3) 저자는 HyFlex 교실을 플랫폼화된 교실이라 부름. 줌과 LMS와 녹화 시스템이 없으면 수업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뜻임.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려고 물신화된 학습 경제(Fetishized Learning Economy, FLE)라는 틀을 제안함. 물신화는 마르크스의 용어로, 물건에 붙은 가격표가 그 물건의 본래 성질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가리킴. 교실로 옮기면 이렇게 됨. 접속 시간, 제출률, 게시판 댓글 수 같은 숫자가 배움 그 자체처럼 보이게 되는 현상임.

2. 연구의 방법

(1) 설문이나 수업 관찰 같은 자료를 모으지 않은 이론 연구임. 비판적 정치경제학, 플랫폼 연구, 고프만의 극장이론, 교육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엮어 새 분석 틀을 짬. HyFlex가 효율적인지를 재는 대신 그 안에서 어떤 힘이 작동하는지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둠.

(2) 논문의 용어가 낯설어 보이지만 가리키는 것은 교실에서 이미 겪는 일임. 먼저 말을 풀어 두면 뒤의 내용이 쉬워짐.

논문 용어 쉽게 말하면 교실에서 보이는 모습
플랫폼화된 교실 플랫폼 위에서 굴러가는 교실 화상회의와 LMS가 멈추면 수업도 멈춤
물신화된 학습 경제 숫자가 배움처럼 보이는 구조 접속 시간과 제출률이 곧 성실함으로 읽힘
교수학습 페르소나 자본 화면에 비치는 나의 값어치 카메라 속 표정과 배경이 평판을 만듦
연출된 현존감 듣고 있다는 티 내기 카메라 켜기, 고개 끄덕이기, 채팅에 한 줄 남기기
교육 플랫폼 자본주의 플랫폼이 참여의 기준을 정하는 상태 대시보드에 잡히는 활동만 참여로 집계됨

3. 주요 발견

(1) 물신화된 학습 경제라는 틀

이 연구의 뼈대는 세 개념임. 교사와 학생이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페르소나 자본), 그것을 어떻게 보여 주는지(연출된 현존감), 그 기준을 누가 정하는지(플랫폼 자본주의)로 나뉨. 만드는 쪽과 보여 주는 쪽과 채점하는 쪽을 갈라 놓은 구성임.

물신화된 학습 경제 프레임워크는 교수학습 페르소나 자본, 연출된 현존감, 교육 플랫폼 자본주의 세 가지 개념이 교차하며 플랫폼화된 교실을 형성함을 보여줌
그림 1. 물신화된 학습 경제(FLE) 프레임워크
개념 무엇을 가리키는가 기댄 이론
교수학습 페르소나 자본 여러 화면에 맞춰 교사와 학생이 만들어 내는 교육적 이미지. 그 값어치는 수업의 질이 아니라 플랫폼 지표가 정함 부르디외(1984), 고프만(1959), 마르크스(1867/2024)
연출된 현존감 참여하고 있다는 신호를 눈에 보이도록 연출하는 행위 보드리야르(1994), 개리슨 외(2000), 벌런트(2011)
교육 플랫폼 자본주의 LMS와 화상회의 도구와 데이터 수집이 교육 소통의 규칙을 정하는 상태 스르니첵(2017), 반 다이크 외(2018), 주보프(2023)

기존 연구와 무엇이 다른지도 나란히 놓으면 분명해짐.

개념 기존 연구가 보던 것 이 연구가 지적하는 빈틈
교수학습 페르소나 자본 기술 도입과 수업 설계 정체성을 꾸며 내는 일을 사소한 실행 문제로 다룸. 실은 HyFlex 소통의 구조 자체임
연출된 현존감 학생 만족도와 참여율 현존감을 저절로 생기는 결과로 봄. 실은 누군가 비용을 치러 만들어 내며 그 비용이 고르지 않음
교육 플랫폼 자본주의 플랫폼의 쓸모와 도입 여부 플랫폼을 중립적 도구로 봄. 실은 소통의 규범을 정하는 상업적 행위자임

논문에서 가장 날이 선 문장은 여기서 나옴. 이 구조에서 교육적 정체성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 교사다움이 안에서 배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이 보상받는지에 맞춰 바깥에서 조립됨.

(2) 교수학습 페르소나 자본, 화면에 비치는 값어치

교사는 한 시간에 여러 말투를 동시에 씀. 앞자리 학생과 눈을 맞추고,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옮기고, 녹화로 볼 학생을 위해 내용의 순서를 정리함. 이 세 가지는 성격이 다른 일이며 각각 품이 듦. 저자는 이를 정체성 노동이라 부름. 요지는 이 노동이 시간표에도 업무 분장에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임. 하지 않으면 티가 나지만 해도 계산되지 않음.

학생 쪽도 같은 일을 함. 카메라를 켜고, 배경을 정리하고, 설명에 맞춰 고개를 끄덕임. 이런 행동이 쌓여 성실한 학생이라는 평판이 됨. 문제는 그 평판을 무엇이 정하느냐임. 교실에서 오간 좋은 토론은 대시보드에 남지 않지만 게시판 댓글 하나와 퀴즈 완료 표시는 남음. 남는 쪽이 값어치를 가짐.

(3) 연출된 현존감, 듣고 있다는 티를 내는 일

교사가 카메라 쪽으로 몸을 돌리는 동작 하나가 두 집단에게 다르게 읽힘. 온라인 학생에게는 나를 향한 말 걸기이지만, 교실에 앉은 학생에게는 카메라를 위한 동작임. 같은 몸짓이 한쪽에는 소통이고 한쪽에는 연출임. 교사는 어느 쪽에도 소홀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계속 나눠 씀.

학생 쪽에서는 이것이 참여의 연극이 됨. 카메라를 켜고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은 실제로 이해했는지와 상관없이 굴러감.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해도 화면에서는 참여로 보임. 반대로 카메라를 끈 채 진지하게 듣는 학생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됨. 보이는 참여가 실제 참여보다 더 진짜처럼 통용되는 상태임.

여기서 비용이 고르지 않게 갈림. 카메라를 켜라는 요구는 모두에게 같은 무게가 아님. 방을 보여 줄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조용한 공간이 있는 학생과 없는 학생에게 요구되는 것이 다름. 형편이 어려운 학생일수록 더 많은 것을 감수하고 같은 점수를 받음.

(4) 교육 플랫폼 자본주의, 참여의 기준을 누가 정하는가

HyFlex 수업은 상업 플랫폼 없이는 굴러가지 않음.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녹화 시스템, LMS가 하나로 엮인 위에서 수업이 돌아감. 그래서 세 가지 일이 함께 벌어짐.

첫째, 교육 노동의 데이터화임. 플랫폼은 교사와 학생의 행동을 계속 기록하고 모아 기관에 되팖. 교사와 학생은 플랫폼을 쓰는 사람인 동시에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됨.

둘째, 참여의 알고리즘적 관리임. 인터페이스 배치, 알림, 분석 보고서가 특정 행동을 부추기거나 눌러 둠. 학교가 규정을 만들지 않아도 규범은 이미 생김. 완료율이 표시되는 활동은 그 표시 때문에 더 많이 하게 됨.

셋째, 진정성의 상품화임. 진짜 지적 교환은 기록하기 어렵고, 기록하기 쉬운 행동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함. 카메라를 켜고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설문에 응답한 학생은 실제로 얼마나 몰입했는지와 무관하게 좋은 평가를 받음. 수치로 잡히지 않는 배움은 없었던 일이 됨.

4. 결론 및 시사점

(1) HyFlex 교실은 접근성을 넓혀 주는 중립적인 수업 방식이 아님. 교육적 정체성이 계속 수행되고 값이 매겨지고 관리되는 소통 공간임. 이 성질은 특정 학교가 잘못 운영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청중과 여러 플랫폼과 여러 현존감을 동시에 확장한 HyFlex 설계 자체에서 나옴.

(2) 저자가 정면으로 깨는 것은 양식 중립적 형평성이라는 통념임. 대면이든 실시간이든 녹화든 학생이 원하는 방식을 고르게 하면 공평해진다는 생각임. 실제로는 각 방식에 드는 비용이 다르고, 플랫폼이 값을 매기는 방식도 다름. 선택지를 늘린 것만으로 형평성이 생기지는 않음.

(3) 교육 현장에는 이렇게 옮겨 볼 수 있음. HyFlex를 도입하기 전에 물어야 할 것은 장비를 갖췄는지가 아니라, 누가 어떤 비용을 치르고 참여로 인정받게 되는지임. 정체성 노동과 연출의 부담이 교사와 학생에게 고르지 않게 얹히므로 이를 덜어 낼 제도적 지원이 함께 설계되어야 함.

(4) 대안으로는 보편적 학습 설계(UDL)와 참여형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제시함. 핵심은 학생을 규범을 정하는 자리에 앉히는 것임. 카메라 켜기 하나만 참여로 치지 않고 채팅, 음성, 비동기 게시판을 같은 무게로 인정하기로 함께 정하면, 플랫폼이 정해 둔 기준을 사람이 다시 정하는 일이 됨.

5. 리뷰어의 ADD(+) One: 생각 더하기

(1) 주목할 지점은 문제를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구조에 둔 것임. 카메라를 끄는 학생을 성의 없다고 보거나 힘들어하는 교사를 적응이 느리다고 보는 대신, 그렇게 만드는 배치를 뜯어봄. 유연한 수업 방식이라는 좋은 이름 아래 누가 더 많은 대가를 치르는지 물었다는 점이 이 논문의 성취임. 다만 이론 연구라 실제 교실에서 그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재지 않았음.

(2) 논문이 말하지 않은 지점을 이어 보면 인지과학과 만남. 연출된 현존감은 학습자의 인지 자원을 두 곳에 나눠 쓰게 만듦. 내용을 이해하는 데 쓸 힘의 일부가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들어감. 표정 관리와 배경 정리에 신경 쓰는 동안 정작 설명은 흘러감. 교육철학 쪽에서 보면 진정성의 상품화는 자유로운 탐구라는 목적을 겉으로 드러나는 보상 체계에 묶어 두는 일임.

(3) 발전시킬 아이디어로는 학기 초에 학급과 함께 소통 규칙을 정하는 시간을 두는 것을 제안함. 절차는 간단함.

  • 이 수업에서 참여로 인정할 행동을 함께 목록으로 만듦
  • 카메라, 채팅, 음성, 게시판 각각의 이점과 부담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함
  • 어느 하나만 참여로 치지 않기로 합의하고 문서로 남김

기준을 만드는 자리에 학생이 있으면, 같은 규칙이라도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함께 정한 것이 됨. 학기 중 한 번 다시 꺼내 고치면 더 좋음.

6. 추가 탐구 질문

(1) HyFlex 환경에서 교사의 감정 노동은 학생의 학습 경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교사의 소진이 학생의 참여나 성취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남기는가.

(2) 비서구권 교실에서 페르소나 자본과 연출된 현존감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가. 카메라 앞에서의 예의나 침묵을 대하는 문화의 차이가 어떤 변수로 작용하는가.

(3) AI 기반 감시와 분석 도구가 늘어날 때 학습자의 데이터 주권과 교육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학교는 상업 플랫폼의 데이터 수집에 어떤 기준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출처

  • Kamaruzaman, N. A. (2026). The Platformized Classroom: Communicative Identity Labor, Staged Presence, and Platform Capitalism in HyFlex Learning. Journal of Education and Training Studies, 14(4), 182–194. https://doi.org/10.11114/jets.v14i4.8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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