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강박을 내려놓을 때, 기술은 비로소 교육의 동반자가 된다
우리는 모두 교육 현장에 기술의 물결이 밀려드는 것을 목격한다. 새로운 도구가 매일 쏟아지고,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한다. 때로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무엇을 잡고 무엇을 놓아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배우 차인표의 담담한 고백은 뜻밖의 통찰을 건넨다.
‘1등’ 강박, 기술 교육 현장의 착각
차인표 작가는 스스로를 “1등을 하거나 상을 받거나 한 적 없는 연예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기에 대한 불안,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강박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33년 배우 생활을 돌아보며, “1등 안 했는데도 잘 살았더라고”라는 깨달음을 전한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옳고 성과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이 시작된다는 주장이다.
우리 교육 현장은 지금 ‘1등’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인근 학교의 스마트 교실 구축 사례, 옆 학년 교사의 AI 활용 수업 우수 사례는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에듀테크 선도 학교라는 명찰을 달기 위해, 혹은 미래 교육 혁신 교사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 최신 기술 도입에 목을 맨다. 하지만 기술 도입 자체가 1등 지표가 될 수는 없다. 본질적으로, 기술의 가치는 학습 개선이라는 척도로 측정된다. 특정 AI 도구를 사용한 학급에서 학생들의 자기 주도 학습 시간이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면, 그것이 1등 지표이다. 단순히 신기능을 도입했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자동으로 1등이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술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받는 것’과 ‘얻는 것’을 혼동한다. 기술 자체는 단순히 제공되는 도구이다. 그 도구를 통해 학생의 사고력이 얼마나 확장되는지, 교사의 행정 부담이 얼마나 경감되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학습의 본질적 목표에 얼마나 가까워지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 사례만을 좇는 태도는 오히려 교육 현장에 불필요한 피로감을 초래한다.
‘생각의 재료’와 기술의 조력자 역할
작가의 역할에 대해 차인표 작가는 흥미로운 비유를 든다. 그는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생각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할 뿐, “완성된 요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독자는 그 재료를 가지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요리를 만들고, 자신만의 해석을 더한다. 작가가 독자의 해석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는 단언이다.
이 관점은 기술이 교육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된다. 많은 에듀테크 솔루션, 특히 생성형 AI 기반 도구는 종종 ‘완성된 요리’를 제공하려 한다. 정답을 제시하고, 요약본을 만들어주고, 심지어 보고서까지 자동으로 작성한다. 이는 학생의 주도적 사고와 해석을 제한하고, 학습자를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교육에서 기술의 역할은 학습자에게 사고의 촉매를 제공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챗GPT는 다양한 관점의 자료를 빠르게 탐색하는 ‘생각의 재료’로 훌륭하게 작동한다. 하지만 이 재료를 어떻게 엮어 자신의 주장을 만들고, 어떤 양념을 더해 깊이 있는 이해를 얻을지는 전적으로 학습자의 몫이다.
교사는 단순히 기술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이 도구가 어떤 ‘생각의 재료’를 제공하고, 학생이 어떤 ‘요리’를 만들도록 지원할지를 설계해야 한다. AI가 생성한 초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양한 정보원과 비교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학습은 비로소 깊어진다. 완성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재료를 탐색하고 가공하는 ‘지적 노동’의 과정에 기술이 효과적으로 개입할 때, 학습의 질은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타인의 시선’과 데이터 윤리
차인표 작가는 ‘타인의 시선’이 때로는 부담스럽지만, 동시에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복합적인 견해를 내놓는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약한 존재이기에 서로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는 라캉의 타자 욕망에 대한 해석을 경계하면서도, 관계의 시작이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됨을 인정한다.
교육 현장에서 ‘타인의 시선’은 종종 학습 데이터의 형태로 구현된다. 학습 관리 시스템(LMS), AI 튜터링 솔루션, 온라인 평가 도구 등은 학생들의 학습 행위와 성과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데이터는 교사에게 학생의 학습 상태를 파악하고 맞춤형 지도를 제공하는 데 필수적인 ‘생존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개념에서 다수의 학생이 반복적으로 오답을 낸다면, 교사는 해당 개념에 대한 추가 지도가 필요함을 즉시 인지한다. 그러나 이 ‘타인의 시선’은 언제든 감시와 통제의 도구로 변질될 위험을 지닌다. 학생의 모든 클릭, 모든 타이핑, 모든 학습 동선이 기록될 때, 학생은 무의식적으로 행동의 제약을 느끼거나 불필요한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다. 이는 학습 자율성 침해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데이터는 선악의 도구가 아니라, 사용하는 주체의 의도와 윤리적 기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우리는 기술이 제공하는 데이터 분석의 편리함을 환영하되, 동시에 데이터 주권과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그림자를 날카롭게 직시해야 한다. 학습 데이터를 활용하는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데이터 수집의 목적과 범위는 명확해야 하며,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는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교사와 학생이 데이터 리터러시를 함양하여, 데이터의 잠재적 위험과 윤리적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의 데이터는 가치 중립적일 수 없으며, 언제나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활용해야 한다.
‘감사’의 마음과 관계 지향적 기술 활용
차인표 작가는 불안감을 이겨내는 가장 강력한 생각으로 ‘감사’를 꼽는다. 그는 자신이 이룬 것을 ‘받은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여유와 편안함의 비밀이라고 말한다. ‘두 덩이의 빵이 있다면 하나는 먹지만 하나는 나눠 주기 위함’이라는 그의 소박한 나눔의 철학은 기술 활용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교육 현장의 기술 활용은 종종 개인의 성과나 효율성 증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 기술을 통해 내 수업이 얼마나 더 효율적이 되었나?’, ‘내가 얼마나 더 많은 성과를 냈나?’ 같은 질문이 우선시된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적 가치는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기술은 이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도구로 작동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 협업 도구는 물리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학생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두 덩이의 빵을 나누는’ 현대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기술이 제공하는 새로운 연결과 공유의 가능성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교사 간의 협력, 학생 간의 협업, 나아가 지역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 집중한다. 기술 활용의 성공 지표는 단순히 학업 성취도 향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사회 정서 학습 능력이 얼마나 증진되었는지, 협력적 문제 해결 능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도 중요한 지표이다. 실천의 출발점은 거창한 제도 개편이 아니다. 동학년 교사와 점심 자리에서 “이번 주 AI 도구 써봤어요?”라고 한마디 건네는 것, 학년 메신저에 수업 중 발견한 학생 반응 한 줄을 올리는 것, 그것이 관계 지향적 기술 활용의 씨앗이다. 우리가 받은 기술의 혜택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타인과 나누고 함께 키워나갈 때, 기술은 비로소 교육의 진정한 동반자가 된다.
출처
- 책과삶. (2026-06-03). 나이들수록 ‘이런 얼굴’ 가진 사람, 무조건 성공합니다 ㅣ Ep. 책과사람 93 (차인표 작가 2부).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