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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며 교육 분야에도 큰 변화의 물결이 밀려온다. AI가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시대에 지식 교육은 더 이상 필요 없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 담론에는 AI의 역할과 인간 학습의 본질을 혼동하는 오류가 있다.

AI 시대, 지식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 학습 외주화의 위험

AI가 던진 교육 질문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 서울교육청, 한국교육개발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AI 시대, 우리 교육의 방향’ 토론회에서 교육계는 여러 문제 의식을 내놓았다. 차정인 국교위 위원장은 AI 활용 증대가 인간 사고 과정을 기계에 의존하게 만드는 ‘사고의 외주화’와 인지 능력 위축을 우려했다. 이광호 국교위 상임위원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직업을 얻던 공식이 깨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AI가 가져올 교육과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언급했다.

실제로 AI 기술은 우리가 일하고 배우는 방식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교과 지식 설명, 문서 작성, 정보 탐색 및 정리 능력에서 AI는 이미 상당수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교육계는 “AI와 구별되는 인간 고유의 역량은 무엇인가?”,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지식 교육은 여전히 필요한가?”와 같은 중요한 질문과 마주한다.

AI는 지식을 대체하는가

교육계 일각에서는 AI가 교육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더는 지식을 가르칠 필요가 없거나 지식 습득의 중요성이 사라졌다는 주장을 편다. 심지어 AI가 모든 답을 제공하는 시대에 학교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회의론까지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AI 시대에 많은 것이 바뀌는 것은 맞지만,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음 표는 AI가 가져온 변화와 변하지 않은 본질을 보여준다.

AI가 바꾼 것 AI가 바꾸지 못한 것
정보 탐색 방식 인간의 배우는 방식
문서 작성 방식 인간 내부의 인지적 변화 과정
번역 및 자료 분석 효율성 학습의 의미 형성 과정
다양한 지식 노동 수행 방식 새로운 정보를 기존 지식에 연결하고 재구성하여 이해하는 과정

교육은 본질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변화의 과정이다. 학습은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정보는 기존 지식과 연결되고 재구성될 때 비로소 이해된다. 이 과정은 AI 등장 이전에도 있었고, AI 발전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학생이 생성형 AI에 광합성 원리를 물으면 AI는 몇 초 만에 훌륭한 설명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설명을 이해하는 주체는 학생이다. 설명의 정확성을 판단하고, 다른 개념과 연결하여 자신의 지식 체계 속에 통합하는 것도 학생의 몫이다. 학습은 AI가 대신 수행하는 외부 작업이 아니라, 학생 내부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구성 과정이다.

학생이 광합성에 대한 기초 개념조차 갖추지 않았다면, AI가 제시한 설명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AI는 지식을 대신 이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대신 제공해 주는 역할만 한다. 이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학습 외주화의 진짜 위험

진정한 문제는 AI가 지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학습과 사고의 과정을 AI에 위탁하는 현상이다. 국가교육위원회 토론회에서 제기된 ‘사고의 외주화’ 우려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사고의 외주화는 학습의 외주화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징후에 가깝다.

학습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니다. 이해하고, 비교하고, 연결하고, 적용하고, 판단하는 사고 과정 전체를 포함한다. 따라서 학생이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AI가 제시한 결과만 소비하게 된다면, 정보 접근은 쉬워져도 학습은 일어나지 않는다. AI가 답을 제공하는 것과 인간이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진짜 위험은 지식의 종말이 아니다. 학습의 외주화이다. 그리고 사고의 외주화는 그 결과가 교육 현장에서 나타나는 가장 분명한 신호이다.

AI 시대 교육의 방향

오늘날 교육계 일각에서는 AI를 근거로 지식 교육의 축소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기초지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AI가 제시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면 기준이 되는 지식이 필요하다. AI의 오류를 발견하고, 다양한 관점을 비교하고,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인간 스스로의 개념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같은 AI를 사용하더라도 결과물의 수준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그 차이는 AI 사용 능력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 수준, 배경지식, 개념 체계, 판단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AI가 평준화시키는 것은 정보 접근의 기회이지 인간의 이해 수준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교육정책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AI 시대 교육의 과제는 지식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초 개념과 핵심 지식을 재정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검증·비교·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데 있다.

AI는 학습의 원리를 바꾸지 않았다. 바뀐 것은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는 환경이다. 오늘날 교육 담론은 이 둘을 종종 혼동한다.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고 활용하는 방식의 변화를 학습 원리의 변화로 착각하고, 기술 환경의 변화를 교육의 본질 변화로 과장하기도 한다.

교육정책은 유행하는 기술 담론 위에서 출발할 수 없다. 인간이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는지에 대한 이해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AI 시대에도 학생은 여전히 이해하고, 기억하고, 연결하고, 적용해야 한다. 인간의 뇌에 지식을 대신 저장해 주는 기술이 등장하지 않는 한, 학습의 기본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AI 시대 교육의 핵심 질문은 ‘무엇을 없앨 것인가’가 아니다. ‘학생들이 AI의 답을 스스로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이다. AI가 발전할수록 지식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은 지식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은 ‘지식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지식을 통해 인간의 사고력을 키울 것인가’이다.

인지과학의 시선으로 보면

뇌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일이 아니다. 기존에 형성된 스키마라는 인지적 틀에 새 정보를 통합하고 재구성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설명을 제공해도, 이 스키마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즉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스키마를 활성화하고 확장하는 재료일 뿐, 스키마 자체를 대신 형성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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