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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연구 남발, 학계 생산성 뒤의 윤리적 그림자
연구의 압박 속에서 새로운 기술의 유혹을 마주하는 것은 학자만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가 전한 한 통계학 교수의 사례는, AI가 약속하는 생산성 혁명이 장밋빛만은 아니며 오히려 학문이 지켜 온 근본적인 가치를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편리함의 이면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에 답해야 하는가.
경이로운 생산성, 그 이면의 그림자
한 시카고대학 통계학 교수의 사례는 충격적이다. 니콜라스 폴슨 교수는 올 한 해에만 200편이 넘는 논문을 단독 또는 공동 저술했으며, 14권에 달하는 책을 출판했다. 통상적으로 학자들은 1년에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아무리 바쁜 교수라도 12편 이상을 내는 경우는 드물다. 폴슨 교수의 이러한 폭발적인 생산성은 즉각적으로 AI 사용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단순한 생산성 논란이 아니다. 아칸소대 경제학자 제레미 호페달은 “9개월 만에 200편 이상의 논문은 전례가 없으며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생산량은 기존 학계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본질적으로 이 사건은 연구의 질과 양, 그리고 저자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확장한다지만, 그 확장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경계가 모호하다.
AI가 촉발한 연구 생태계의 교란
기술의 발전은 항상 양면을 가진다. AI는 연구자가 반복적인 작업을 빠르게 처리하도록 돕는 유용한 도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연구 파이프라인에 표절, 중복 연구, 허위 인용, 데이터 분석 오류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잠재력을 지닌다. 조직 과학(Organization Science) 저널의 선임 편집자 클라우딘 가튼버그는 “지금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저품질 연구의 홍수가 밀려올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허위 연구는 대중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1998년 란셋에 발표된 MMR 백신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주장한 논문은 이후 철회되었으나 백신 불신을 조장했다. 이와 유사하게 듀크대학의 암 연구 역시 잘못된 유전자 검사로 환자 치료에 혼란을 주었다.
최근 한 연구는 3,200편의 동료 심사 논문 중 2%가 검증 불가능한 참고 문헌을 포함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 다른 연구는 AI 관련 학회에서 채택된 논문 300여 편에서 존재하지 않는 인용이 발견됨을 지적한다. 이러한 수치는 AI가 단순한 실수에 그치지 않고 연구의 기본 신뢰를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부하 걸린 검증 시스템, 흔들리는 신뢰
AI로 인해 학자들이 더 많은 연구를 쏟아낼수록, 이를 심사하고 문제를 걸러내야 하는 편집자와 심사자들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가튼버그 편집자는 챗GPT가 처음 공개된 2022년 이후 자신의 저널 투고량이 두 배로 늘었으며, 자매 저널들 또한 비슷한 추세라고 밝혔다. 대형 학술 출판사 엘스비어 역시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저널 투고가 68%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이는 단순한 업무량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가튼버그는 일부 심사자들이 심사 과정에 AI를 사용하여 심사 품질이 저하되는 상황까지 목격했다고 말한다.
AI 활용 확산이 연구 심사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
| 영향 요소 | 챗GPT 등장 이전 | 챗GPT 등장 이후 | 변화의 본질 |
|---|---|---|---|
| 저널 투고량 | 안정적 또는 점진적 증가 | 급증(두 배, 68% 등) | 연구 생산성 가속화 |
| 편집자·심사자 부담 | 관리 가능한 수준 | 과부하, 업무량 폭증 | 현행 시스템 한계 노출 |
| 심사 품질 | 인력 기반의 신뢰성 | AI 활용으로 인한 불균일 | 시스템적 신뢰도 저하 |
| 허위·부실 논문 유입 | 상대적으로 낮음 | 증가 가능성 높음 | 과학적 진실성 훼손 |
이러한 변화는 동료 심사 과정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저해한다. 만약 모든 논문이 과거 MMR 백신 논문처럼 조작되거나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이 깔린다면, 학계 연구 전반에 대한 신뢰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학적 발견의 토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AI, 생산성 도구인가 윤리적 딜레마인가
폴슨 교수는 이메일에서 AI가 “생산적인 연구자를 훨씬 더 생산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며, “잡무의 많은 부분이 훨씬 쉬워진다”고 덧붙였다. 그는 비판이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이 말은 AI의 잠재력을 인정하는 동시에, 기술 사용의 윤리적 경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의 연구를 공유했던 SSRN 플랫폼은 AI 사용 명시를 요구하지만, 폴슨 교수의 논문에서는 이러한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SSRN이 그의 논문 257편을 삭제한 주된 이유는 AI 비공개보다 “비정상적인 제출 활동”에 있었다고 밝혔다. 콜롬비아대 통계학자 앤드루 겔먼은 폴슨 교수가 공동 저술한 80쪽짜리 논문을 두고 “별다른 가치를 찾지 못했다”며 “챗봇이 그 상당 부분을 써냈을 법하다”고 비판했다.
이 사례는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연구 윤리 사이의 긴장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AI가 ‘잡무’를 줄여준다는 주장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잡무가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떤 수준의 개입까지 저자성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본질적으로 AI가 전례 없는 속도로 콘텐츠를 생성할 때, 인간의 독창성과 책임의 영역을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다.
함께 정의할 연구의 미래
가튼버그 편집자조차 일상적인 업무와 초기 데이터 탐색에 AI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AI의 효율성은 분명한 강점이다. 그러나 그 잠재력을 살리면서도 연구의 본질적 가치를 지키려면, 우리는 새로운 원칙과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세상이 변했다”는 가튼버그의 말처럼, 과거의 관행만으로는 이 기술적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우리는 이제 AI 활용 연구의 투명성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AI를 사용했다”는 모호한 공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단계에서 어떤 AI 도구가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프로토콜이 필요하다. 데이터 분석의 특정 부분, 문헌 정리의 초기 초안, 특정 섹션의 아이디어 구상처럼 각 단계별 AI의 기여도를 구분하고 저자의 최종 책임 범위를 명시하는 것이다. 이는 동료 검토자들도 AI의 개입 정도를 인지하고 심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 논의는 학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 현장에서도 학생들의 AI 활용은 이미 현실이다. 교사들 역시 AI를 활용한 학습 자료 제작, 피드백 자동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기술적 파도를 타고 어디로 가려 하는가.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대신, 교육 공동체 안에서 AI 시대의 ‘저자성’과 ‘학습 책임’을 재정의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화와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동학년 교사들끼리 AI 활용 사례를 나누고, 특정 학습 활동에서 AI가 어떤 도움을 주었고 어떤 한계를 보였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작은 시작이 변화를 만든다. 의심스러운 결과가 나왔을 때 함께 앉아 AI의 ‘사고 과정’을 역추적해 보는 5분의 대화가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출발점이다.
출처
- Todd Wallack, “Using AI, a professor wrote 200 papers this year. Researchers are alarmed.” The Washington Post, 2026-09-23. https://www.washingtonpost.com/education/2026/09/23/nine-months-200-academic-papers-one-professors-ai-assisted-outp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