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A 2029 미디어·AI 리터러시와 교육의 새로운 방향
AI와 미디어 기술이 급변하며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든다. 이 변화 속에서 교육은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까. OECD가 2029년 PISA 평가 혁신 영역으로 제시한 미디어·AI 리터러시(MAIL) 프레임워크는 이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이는 AI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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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새로운 도전
AI와 로봇이 일상화되는 미래는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AI 기술은 전에 없던 속도와 넓이로 삶의 국면을 전면적으로 바꾸고 있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 없이 기술 도입과 활용이 맹목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급격한 전환은 여러 새로운 문제 상황을 낳는다.
미디어·정보 환경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생성형 AI 보편화는 미디어 환경을 짧은 시간 안에 바꾸었다. 텍스트, 이미지, 음성, 영상이 몇 초 만에 생성되고, 알고리즘은 누가 무엇을 보게 될지 결정한다. 정보의 양보다 정보 구성 주체와 작동 방식이 불투명해진다. AI가 만드는 콘텐츠는 인간 감독 없이 서사를 형성하고 메시지 어조를 결정한다.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에코 챔버와 필터 버블을 강화하고 대안적 관점 노출을 좁힌다. 생성형 AI의 환각(hallucination) 콘텐츠는 사실과 다르게 권위 있는 정보를 일상적으로 만들어내며, 정보 신뢰성 판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청소년 발달과 교육 영역은 새로운 위험에 직면한다. 미디어 플랫폼과 AI 시스템이 일상에 내장되며 청소년 심리·사회·인지·신체 발달에 미치는 위험이 증폭된다. 인지의 외주화, 알고리즘 조작, 딥페이크의 정서적 영향, 개인화된 피드의 중독적 성격이 함께 작용한다. 한국에서는 10대 가해자 중심의 AI 기반 디지털 성범죄 급증, AI 챗봇에 대한 청소년의 정서적 의존 확산이 가시적 문제로 나타난다. 교육 현장에서는 AI의 부정확한 응답, 표절과 학생 작업 진정성, AI 도구 사용의 교육적 적절성, 학업 공정성에 대한 논쟁이 누적된다.
민주주의와 시민성에 대한 도전도 이어진다. AI 기술은 딥페이크 기반 사기, 피싱, 악성코드 공격 자동화를 확장한다. 이러한 캠페인은 여론을 흔들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분열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은 불균등하게 분포하며, 성별·연령·교육에 따른 전통적 격차가 디지털 영역에서도 지속되어 주변화된 집단이 더 큰 위험에 처한다. 미디어 플랫폼과 AI 시스템을 운영하는 소수 기업에 권력이 집중되는 가운데, 알고리즘이 매개하는 공론장에서 시민이 어떻게 정치적 판단을 형성하는가의 문제가 새롭게 제기된다. PISA 2022 결과 한국 학생들은 읽기 평균 점수는 OECD 상위권이었으나,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능력에서는 두드러진 약점을 보인다. 이는 한국 사회가 이러한 도전에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기술 활용 교육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위기이다. 딥페이크에 가담하거나 노출되는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AI 도구를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 미디어 메시지 구성과 표상 권력, 타인에 대한 윤리적 책임에 대한 이해이다. AI 챗봇에 의존하는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챗봇 사용법이 아니라 AI 매개 환경 자체에 비판적 거리 두기를 할 능력이다. 현재의 문제 상황은 AI를 단순히 학습 도구로 보는 발상으로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AI는 이미 학습자가 살아가는 미디어 환경 그 자체가 되었고, 이를 분석·평가·창작·시민적 참여의 대상으로 다루는 새로운 리터러시 개념이 요청된다.
미디어와 AI 리터러시를 통합한 MAIL 프레임워크
OECD가 2026년에 발간한 PISA 2029 혁신 영역 프레임워크 초안 「Navigating an Evolving Digital World: First draft of the PISA 2029 Media and Artificial Intelligence Literacy (MAIL) Assessment Framework」는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2029년에 시행될 국제 비교 평가의 개념적 토대를 제시한다. PISA는 3년 주기로 혁신 영역을 추가하며 학생 역량 측정을 확장해 왔다. PISA 2015의 협력적 문제해결, 2018의 글로벌 역량, 2022의 창의적 사고에 이어 MAIL은 2029 사이클의 혁신 영역으로 채택된다.
보고서 집필에는 인문·사회과학 전통의 학자들이 주축을 이룬다. 미디어 리터러시, 인지심리학, 잘못된 정보 연구, 교육철학·미디어 생태학, 교육평가, 인식론의 심리학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순수한 컴퓨터과학·교육공학 배경의 학자는 없다. 이러한 집필진 구성은 보고서가 AI를 기술적 영역으로만 다루지 않고, 미디어·문화·심리·시민성의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함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초안이지만, PISA 평가 프레임워크는 통상 시행 3~4년 전 초안 공개로 참여국의 정책 논의와 준비를 이끌어 왔다. 그 기본 틀과 방향이 전격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MAIL 보고서는 독립적으로 강조되던 전통적 미디어 리터러시와 최근 강조되는 AI 리터러시가 상호의존적이라는 현실을 핵심 문제의식으로 삼는다. AI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시대에 뒤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강조한다. AI가 실재를 필터링하고 프레이밍하는 미묘하지만 강력한 방식을 간과하고 진정성과 편향을 분별하는 능력에 공백을 남길 수 있다. AI 리터러시 역시 학제 간 폭넓게 고려되지 않으면 더 넓은 사회·문화·윤리적 맥락에서 단절될 위험이 있다. AI 시스템 작동 방식 이해만큼이나, 시스템이 전파하는 서사·표상·편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도구가 필요하다.
MAIL은 AI 리터러시에 미디어를 단순히 더한 개념이 아니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고전적 비판 도구를 AI에 적용하여, AI를 ‘기술’이 아닌 ‘새로운 미디어’로 보는 관점이다. 전통적인 미디어 리터러시의 판단 기준(권위, 진정성)은 AI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고 새로운 판단 기준(투명성, 설명가능성)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기준은 두 영역의 교차점에서 새롭게 등장한다.
다음 표는 미디어 리터러시와 AI 리터러시의 학문적 배경과 핵심 질문을 비교한다.
| 분류 | 미디어 리터러시 | AI 리터러시 |
|---|---|---|
| 학문적 역사 | 1960년대부터 축적된 신문·방송·영화 연구 전통 | 2020년대 이후 본격화 |
| 이론적 토대 | 비판이론, 기호학, 문화연구, 수용자 연구 | 컴퓨팅 사고, 데이터 과학, 윤리학 |
| 핵심 질문 | “누가 이 메시지를 만들었고, 누구를 위해, 어떤 의도로?” | “이 기술은 어떻게 작동하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 추구하는 인간상 | 비판적 해석자, 시민, 창작자 | (보고서에 명시되지 않음) |
AI가 미디어 환경 자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두 영역 통합의 주요 논거다. AI는 다음 세 가지 방식으로 미디어가 된다. AI는 멀티모달 방식으로 텍스트, 이미지, 음성, 음악, 영상 등을 생산하며 미디어 생산 양식을 바꾼다. AI 추천 시스템이 학습자가 무엇을 보고 알게 되는지를 결정한다. 대화형 에이전트, 챗봇은 학습자의 사회·정서적 삶을 매개한다. 이 세 가지 상황이 동시에 발생한다. 따라서 미디어를 분석하면서 AI를 제외할 수 없고, AI를 이해할 때 AI가 만들어내는 미디어 환경을 제외할 수 없다. AI 리터러시를 단독으로 접근할 경우 ‘기술적이고 단절된’ 영역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MAIL의 세 가지 핵심 개념 축
MAIL은 두 영역 통합 과정에서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낸다. 보고서는 세 가지 핵심 개념 축을 제시하며, 이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고전적 질문을 AI 시대에 다시 묻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음 표는 MAIL의 세 가지 핵심 개념 축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아이디어와 AI 리터러시가 기여하는 점을 설명한다.
| 개념 축 | 미디어 리터러시 아이디어 | AI 리터러시 기여 |
|---|---|---|
| 저자와 수용자 | 저자는 다른 목적과 특정 수용자를 위해 메시지를 만든다. | AI가 생성한 메시지는 인간-기계 협업으로 생산되며, 데이터·설계·사용자 입력이 목적과 수용자를 함께 형성한다. |
| 사회경제적·문화적 맥락이 저자의 메시지 생성과 수용자의 메시지 해석에 중요하다. | 사회경제적·문화적 맥락은 AI가 생성한 출력물을 사람들이 어떻게 프롬프팅하고 해석하며 응답하는지를 형성한다. | |
| 경제적·정치적 힘이 미디어 창작자와 수용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에 추동되는 기술 산업은 AI 시스템 개발·배치를 형성하며, 사람들이 정보에 접근·생성·공유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 |
| 메시지와 의미 | 미디어 메시지는 정보 제공, 오락, 설득을 목적으로 구성된다. | AI 시스템은 미디어 메시지를 생성·필터링·개인화하며, 사람들이 정보·오락·설득에 접근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형성한다. |
| 미디어 메시지는 가치, 이데올로기, 특정 관점을 담고 있다. | AI 시스템 기반 학습 데이터와 설계 선택은 사용자가 받는 출력물을 형성하는 가치와 편향을 내포한다. | |
| 미디어 메시지는 사람들의 신념, 태도,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 AI 시스템은 정보를 필터링·개인화·제시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신념, 태도,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 |
| 실재와 재현 | 미디어 메시지는 실재에 대한 선택적 표상이다. | AI가 생성한 메시지는 인간의 선택과 기계 처리 과정이 함께 형성하는, 구성된 실재의 표상이다. |
| 미디어 메시지는 아이디어와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일반화를 사용한다. | AI 시스템과 AI가 생성한 콘텐츠는 학습 데이터와 설계 선택에 내재된 편향을 부호화하고 증폭한다. | |
| 미디어 메시지의 신뢰성은 권위와 진정성으로 판단된다. | AI 시스템의 신뢰성과 신뢰가능성은 투명성과 설명가능성으로 판단된다. |
‘저자와 수용자’ 경계가 흐려진다는 점은 측정 대상 성격을 바꾼다. AI 생성물을 인간-기계 ‘협업’ 산물로 규정하면, 저자는 단일 인간 주체가 아니고 AI 시스템 자체가 매개자이자 공동 저자가 된다. 동시에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도 무너진다. 평가가 ‘메시지 이해도’를 넘어, 학습자가 생산·해석·반응 전 과정에서 권력관계와 의도를 따지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메시지와 의미’ 접근은 편향 소재를 ‘메시지 표면’에서 ‘시스템 내부’로 옮긴다. 전통 관점에서는 가치·이데올로기가 완성된 메시지 안에 담겼다고 보았으나, AI 리터러시 관점을 더하면 편향이 훈련 데이터와 설계 선택이라는 더 깊은 층위에 내장된다고 본다. 학습자는 ‘이 기사가 어떤 관점을 담았는가’를 넘어 ‘이 출력물을 만든 시스템이 어떤 데이터로 무엇을 학습했고, 어떤 설계 결정이 개입했는가’까지 분석해야 한다. ‘개인화’는 메시지론의 새로운 핵심 변수다. AI가 메시지를 필터링·개인화한다는 점은 같은 사회를 사는 두 학습자가 서로 다른 ‘메시지 환경’을 경험한다는 의미다. 이제 각자에게 다르게 제시되는 정보 흐름 자체를 비판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실재와 재현’에서 신뢰성 판단 기준 자체가 재정의된다. 전통적으로 미디어 신뢰성은 ‘권위·진정성’으로 판단되었다. AI 리터러시는 여기에 ‘투명성·설명가능성’이라는 전혀 다른 평가 축을 추가한다. 학습자가 ‘누가 말했는가(권위)’를 묻는 데서 나아가 ‘이 시스템이 어떻게 그 결과에 도달했는가(과정의 투명성)’를 물어야 함을 뜻한다. 이 개념 축은 딥페이크, 고정관념 증폭 등 구체적 해악을 전면에 부각하며, 단순히 ‘비판적으로 읽자’를 넘어 사회적 차별·왜곡으로 이어지는 실질적 위험을 평가 대상에 포함하려는 방향을 보여준다.
MAIL의 역량 모델과 평가 방향
PISA 2029 혁신 영역 평가는 미디어·인공지능 리터러시(MAIL)를 ‘디지털 콘텐츠, 미디어 플랫폼, 그리고 AI 시스템에 효과적이고 윤리적이며 책임 있게 참여하기 위해 요구되는 역량의 집합’으로 정의한다.
MAIL 역량 모델은 동심원 구조를 지닌다. 중심에 ‘윤리적·책임 있는 성찰과 실천’이 있고, 이를 둘러싸고 ‘접근과 활용’, ‘분석과 평가’, ‘참여와 협력’, ‘창작’의 네 역량이 배치된다. 가장 바깥 원에는 앞서 언급한 핵심 개념인 ‘저자와 수용자’, ‘메시지와 의미’, ‘재현과 실재’가 둘러싸고 있다. 중심에 있는 ‘윤리적이고 책임 있는 성찰과 행동 역량’은 다른 모든 역량을 가로지르는 횡단적 역량으로, 나머지 모든 역량의 토대가 된다.
보고서는 각 역량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학생에게 기대되는 역량 수준을 상·중·하로 구분해 제시한다. 이 진척도는 학생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접근과 활용(Access and Use)’ 역량은 ‘미디어 플랫폼과 AI 매개 환경에서 디지털 콘텐츠에 효과적으로 접근·검색·질의·프롬프팅·큐레이션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그 기대 수준은 다음과 같다.
- 상: 검색 방법을 비판적으로 선택하고, 개인정보를 보호하며, 기술적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디지털 환경을 전략적으로 탐색한다.
- 중: 정보를 필터링하고 콘텐츠를 조직하며 일반적인 문제를 식별할 수 있으나, 보다 복잡한 도구, 데이터 관리, 추천 시스템 이해, 복합적 문제 해결과 관련된 친숙도에는 여전히 공백이 있다.
- 하: 일반적인 디지털·AI 도구에 대한 기초 지식과, 검색을 수행하고 파일을 정리하며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초 능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량 모델과 기대 수준 제시 방식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추상적 역량을 ‘측정 가능한 대상’으로 전환하고, 리터러시를 ‘있다/없다’가 아닌 ‘발달의 연속선’으로 본다. 또 역량 모델의 구조는 가치 우선순위를 드러낸다. ‘윤리적·책임 있는 성찰과 행동’을 중심에 둔 설계는 이 프레임워크가 기술적 숙련보다 윤리적 판단을 리터러시의 핵심으로 본다는 입장을 구조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평가뿐 아니라 교수·학습의 공통 언어를 제공한다.
한국 교육이 직면한 질문들
AI는 이미 한국 교실의 일상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AI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물음은 ‘AI라는 기술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활용하게 할 것인가’로 좁게 다뤄지는 경향이 있었다. MAIL 프레임워크는 이 통념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평가는 AI를 다루는 기술적 숙련이 아니라, AI가 매개하는 정보 환경을 비판적·윤리적·책임 있게 항해하는 역량을 측정한다. PISA 참여국인 한국에도 직접적인 함의를 갖는다.
다음 표는 MAIL 프레임워크가 한국 교육에 던지는 주요 질문들을 영역별로 정리한다.
| 질문 영역 | 한국 교육의 기존 관점 | MAIL이 제시하는 질문과 방향 |
|---|---|---|
| 개념 | ‘AI 리터러시’는 교육공학·정보 교과 틀에서 AI 작동 원리 이해와 도구 활용 중심의 ‘기술적 역량’으로 정의된다. | AI 리터러시를 미디어 리터러시와 결합한 MAIL은 기존 전제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디어 교육 전통 위에 AI 층위를 얹어 AI가 매개하는 환경으로 전통적 질문을 확장한다. |
| 교육과정 | ‘디지털 소양’은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기술의 이해와 활용, 정보 교과 중심 체계로 구축된다. 비판적 이해와 윤리 의식도 반영되지만, 무게중심은 ‘기술 활용’에 가깝다. | ‘디지털 소양’을 미디어·AI를 비판적으로 항해하는 통합 역량으로 확장할 것인가? MAIL의 횡단적 역량은 특정 교과에 귀속되지 않고 교과 간 연계로 풀어내는 설계를 지향한다. |
| 정책 도구 | ‘AI를 통한 학습(learning through AI)’ 중심의 AI 디지털교과서(AIDT)가 한국 AI 교육 정책의 상징이었다. | AIDT 이후 모델은 ‘AI를 통한 학습’에서 ‘AI에 대한 학습(learning about AI)’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것인가? MAIL은 AI를 비판적 분석의 ‘대상’으로 세워 학생들이 AI의 환각, 편향, 권력관계를 따져 묻도록 요구한다. |
| 거버넌스 | 미디어 교육(국어·사회과)과 AI 교육(정보 교과)이 교과 차원에서, 여러 부처(교육부, 방통위, 문체부, 과기부)가 정책 차원에서 분절되어 있다. | MAIL이 요구하는 통합 역량을 책임지고 추진할 주체가 모호하다. 횡단적 설계의 책임 분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처 간 협의체나 공동 거버넌스 구축 같은 국가 차원의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
| 평가 | 한국의 디지털 소양 진단은 객관식 컴퓨터 기반 검사(CBT)가 주를 이룬다. 표준화와 대규모 시행에 유리하나, 윤리적 성찰 등 MAIL 역량 측정에 한계가 있다. | 비판적·윤리적 역량을 측정하려면 시나리오 기반 수행평가가 필요하다. MAIL은 객관식 문항과 더불어 몰입적 시나리오 안에서 여러 도구를 쓰는 긴 과제를 병행한다. 정답이 아니라 행동 선택 과정과 전략적 사고를 중시한다. |
| 교사 전문성 | AI 교육은 사실상 정보·기술 교과 교사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다. 정보 교과 중심 모델은 ‘AI 다루는 법’은 가르쳐도 ‘AI 비판적으로 의심하는 법’까지 책임지기 어렵다. | MAIL은 모든 교과 통합 모델을 제안한다. 모든 예비·현직 교사가 자기 교과 안에서 미디어·AI 리터러시를 다룰 최소한의 공통 역량을 갖추도록 양성과 연수 체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
| PISA 2029 대응 | PISA 결과는 한국 교육정책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 교육은 정답이 분명한 과제에는 강하지만, 개방형 수행, 측면 읽기, 윤리적 실천 과제에는 노출 경험이 적다. | MAIL이 강조하는 비판적·윤리적 역량은 훈련으로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없다. 시험 대비보다 개념 재정의, 교육과정 확장, 정책 도구 전환, 거버넌스 통합, 평가 전환, 교사 전문성 재설계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
관점의 전환을 요구하는 MAIL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AI 기술 시대를 맞아 전환적 사고가 요청된다. 그러나 우리의 사유는 과거의 지적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PISA 2029 MAIL 프레임워크가 던지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AI 리터러시가 ‘AI를 이해하고 다루는 기술적 역량’이라는 기술 교육공학적 정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AI 기술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비판적·윤리적으로 항해하려면 미디어 교육의 통찰과 기술공학적 접근이 통합된 새로운 개념과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 보고서는 두 영역 통합의 선언이다.
이 보고서는 OECD가 만든 외적 기준이지만, 우리나라 AI 리터러시 및 미디어 교육 정책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내적 과제와 정확히 만난다. 미디어 교육과 정보 교육의 분절, 디지털 소양의 좁은 정의, 비판적 역량을 측정하지 못하는 평가 관행은 이미 우리 안에서 제기되어 왔던 물음이다. MAIL은 그 물음에 대해 외부에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뤄 온 질문을 다시 검토하게 한다.
다만 그 검토가 보고서 프레임워크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표준화와 시장화 문제, 측정 가능한 것만 가르치게 되는 환원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MAIL 평가 프레임워크는 도달해야 할 절대 기준이 아니라, 예측과 통제를 넘어서는 AI 미디어 환경의 다양한 위험성을 줄이고 관련 정책의 현주소를 점검하게 해주는 참조점으로 다뤄야 한다. 이 보고서의 가치는 우리에게 따라야 할 정답을 주는 데 있기보다, 지금까지 미뤄 온 질문들을 선명하게 비춰주는 데 있다.
이 보고서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관점의 전환이다. 표면적으로는 개념·교육과정·평가 같은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저변에는 하나의 공통된 전환이 있다. 학생을 ‘AI를 활용하는 사람’에서 ‘AI가 매개하는 세계를 비판적으로 살아가는 주체’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이는 ‘AI를 어떻게 가르칠까’라는 효율의 물음에서, ‘학생이 AI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과 사회를 지키도록 어떻게 도울까’라는 시민성의 물음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나아가 이는 인간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AI가 쓰고, 그리고, 판단까지 대신하는 시대에 이 보고서가 윤리적 성찰을 모든 역량의 중심에 둔 것은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자리’를 교육의 핵심으로 지키려는 선언이다. 우리의 과제는 MAIL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도, 점수로 환산해 대비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가리키는 관점의 전환을 우리의 맥락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다. 외부 기준을 거울로 삼되 우리의 언어로 다시 쓰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비판적으로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학생’을 두는 것, 그것이 MAIL이라는 새로운 참조점을 마주한 우리 교육의 진짜 과제이다.
음악이론·즉흥연주의 시선으로 보면
음악이론과 즉흥연주에는 ‘모드(mode)’라는 개념이 있다. 모드는 단순히 음계를 구성하는 음정 관계를 넘어, 그 음계가 만들어내는 특정한 분위기와 정서, 그리고 연주자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는 규칙과 가능성의 틀을 제공한다. MAIL이 제시하는 관점의 전환은 이와 유사하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는 것은 정해진 음표를 그대로 연주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AI를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자 비판적 성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주어진 모드 안에서 연주자가 자신의 해석과 윤리적 판단을 더해 새로운 음악적 서사를 창조하는 즉흥연주자의 태도와 맞닿는다. 이는 기술이라는 음표를 넘어, 그 음표들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지 이해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연주자의 역량을 요구한다.
출처
- 주정흔, 「미디어·AI 리터러시 통합 평가의 등장과 AI 리터러시 교육의 방향 찾기 - PISA 2029 Media and Artificial Intelligence Literacy(MAIL) Assessment Framework 보고서를 중심으로」, 서울교육 이슈페이퍼 2026년 제2호(통권 제66호),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책연구소, 2026.
- 원문 PDF 전문: 내려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