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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세계에는 시대를 불문하고 지켜지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규칙이 개정되더라도, 과거의 공식 기록은 소급하여 수정되거나 삭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농구 역사에서 윌트 체임벌린의 독주를 완화하기 위해 레인 확장과 골텐딩, 자유투 관련 규칙이 새로 도입되었고, 카림 압둘자바의 압도적인 골밑 장악력으로 인해 미국 대학 농구(NCAA)에서 덩크슛이 전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바뀐 이후에도 체임벌린의 한 경기 100득점이나 압둘자바의 대학 통산 기록은 영구 공인 기록으로 온전히 보존되었습니다.

축구의 오프사이드나 판정 규칙이 개정된다고 해서,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과거의 공식 경기에서 온 힘을 다해 터뜨린 골 기록을 소급해 지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제도의 개선은 미래를 향해야 하며, 지난 경기에서 땀 흘려 얻은 정당한 결과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 교육 행정에서는 이러한 보편적 상식과 정반대의 일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공적으로 주관하고 채점했던 교사들의 성취 기록을, 국가가 사후에 일괄 삭제하겠다는 입법예고가 나온 것입니다.

교육부 「교원 등의 연수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문의 개정이유
교육부 「교원 등의 연수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문의 개정이유. (자료: 교육부)

약속과 인정, 그리고 일방적인 삭제

교육부가 지난 2026년 9월 11일 입법예고한 「교원 등의 연수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입법예고 제88520호)은 교감 승진후보자 명부에서 최대 9.000점으로 반영되던 1급 정교사 자격연수(1정 연수) 성적을 2030년부터 전면 배제하고, 종전 규정의 효력을 2029년 12월 31일로 종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료 교사 간의 과도한 경쟁을 줄이고 역량 중심의 협력적 연수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정책적 지향점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변화의 부담을, 국가가 제시한 룰을 성실히 따르며 젊은 날을 헌신했던 교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가는 “정해진 규칙대로 연수를 이수하고 시험을 치르면, 그 성적을 승진 평정의 공식 점수로 인정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교사들은 그 국가의 약속을 신뢰하며 방학을 온전히 반납한 채 치열하게 연수에 임했고, 공식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보직교사, 기피 업무, 험지 근무 등을 묵묵히 수행하며 10~20년에 걸친 교직 생애를 설계해 왔습니다.

그런데 2020년부터 연수가 합격·불합격(P/F) 방식으로 전환되었다는 이유로, 이제 와서 “종전 체제에서 공식 인정한 점수마저 2030년부터는 지우겠다”고 합니다. 이미 공식 종료된 경기의 득점판을 심판이 나중에 떼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조치입니다.

현행 규정의 자격연수 성적평정점 산식에 줄을 긋고 개정안에서 반영하지 않는다고 표시한 비교 화면. 부칙에 따라 2029년 12월 31일까지만 종전 규정이 적용된다
현행 규정의 자격연수 성적평정점 산식에 줄을 긋고 개정안에서 반영하지 않는다고 표시한 비교 화면. 부칙에 따라 2029년 12월 31일까지만 종전 규정이 적용된다. (자료: 1jeong-ihae.vercel.app)

비현실적인 유예와 달력 한 장의 불합리

교육부는 2029년 말까지 종전 규정을 유지하므로 약 3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교원 인사 구조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는 실질적인 보호 대책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교감 승진후보자 명부는 매년 봄에 단 한 차례 작성됩니다. 따라서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종전 성적이 반영되는 실질적인 마지막 기회는 2029년 봄 명부뿐입니다. 입법예고 시점 기준으로는 2년 반, 실제 공포 시점을 고려하면 불과 2년 남짓한 시간입니다.

교감 승진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경력, 보직 경력, 근무성적 평정 등은 1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차분히 축적되는 요소들입니다. 이를 2년 안에 메우라는 것은, 마치 축구 경기 종료 직전 “추가 시간 2분을 줄 테니 20골을 넣으라”고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조건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달력 한 장 차이로 발생하는 불합리함입니다. 같은 시기에 동일한 시험을 치러 똑같이 100점 만점을 받은 두 교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만약 한 교사가 육아휴직 1년으로 인해 명부에 오르는 시점이 2029년에서 2030년으로 넘어가게 되면, 그가 국가로부터 공인받았던 9.000점은 고스란히 0점이 됩니다.

승진 명부에서 0.001점 단위로 순위가 엇갈리는 현장의 현실을 감안할 때, 9점이라는 격차는 십수 년의 헌신을 무력화할 수 있을 만큼 결정적입니다. 무엇보다 1정 연수는 교직 생애 단 한 번만 응시할 수 있는 법정 연수이기에, 다시 시험을 치러 만회할 길조차 원천적으로 열려 있지 않습니다.

법치행정의 기본인 신뢰보호원칙에 대한 성찰 필요

행정기본법 제12조는 신뢰보호의 원칙을 규정하며, 공적 견해 표명을 신뢰한 국민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새로운 제도에 따라 소급하여 불리하게 처리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제도를 개편할 때 언제나 기득권과 신뢰의 보호를 무겁게 다루어 왔습니다. 과거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 제도를 안착시킬 때도 8년이라는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었습니다. 교육부 역시 2022년 승진 규정상 연구실적 평정점을 하향 조정할 당시 “장기간 노력한 교원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밀한 경과조치를 함께 마련한 전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는 그러한 세심한 배려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020년 연수 평가를 P/F로 전환할 당시 교육부는 “변별력을 보완할 별도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수년간 논의되어야 했던 것은 두 평가 체제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환산 기준과 완충 장치였지, 기존 취득자의 성적을 일괄 삭제하는 방식이어선 안 되었습니다.

하향 평준화가 아닌 진정한 형평성

새로운 P/F 평가 체제로 연수를 이수한 후배 교사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형평성은 한쪽 집단이 과거의 정당한 규칙 안에서 흘린 땀과 성취를 지워버리는 하향 평준화로 달성될 수 없습니다.

상대평가 세대와 P/F 세대가 공존하는 기간 동안 납득할 만한 가중치를 두거나 합리적인 보정 산식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행정이 맡아야 할 본연의 책무입니다.

기존 점수 보유 교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를 넘어서는 과도한 기득권이나 특혜가 아니라, “내가 치른 시험의 본래 규칙대로 공정하게 인정해 달라”는 가장 기초적인 법적 안정성의 요구입니다.

이미 받은 점수는 받은 규칙대로, 새 제도는 새 이수자부터.

이 단순하고 명확한 원칙이야말로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인 접근입니다.

국민참여입법센터 입법예고 88520의 공개 의견 1,032건 중 85%가 반대(2026. 10. 9. 오후 4시 45분 기준)
국민참여입법센터 입법예고 88520의 공개 의견 1,032건 중 85%가 반대(2026. 10. 9. 오후 4시 45분 기준). (자료: 1jeong-ihae.vercel.app)

다시 공정과 상식의 자리로

국가가 스스로 공인한 평가 결과를 사후에 부인하기 시작하면, 제도의 안정성은 흔들리고 행정에 대한 신뢰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정책과 방침이 바뀌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점수’라는 회의가 번진다면, 험지 근무와 기피 업무를 마다하지 않으며 학교 현장을 지키려는 열정도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규칙이 바뀌어도 과거의 정당한 득점 기록은 함부로 지우지 않는 스포츠의 기본 상식처럼, 교육 행정 역시 교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헌신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입법예고의 의견 수렴 마감일은 2026년 10월 23일입니다. 교육부는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일방통행식 개정안을 재검토하고, 기존 성적 취득자들이 실제 승진 대상이 될 때까지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경과조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행정, 성실한 노력의 결실을 배신하지 않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학생들에게 당당하게 가르쳐야 할 진정한 공정과 상식이 아닐까 합니다.

출처

  • 김진관(대전 둔천초등학교 교사), 「[이슈 제안] 1정 연수 성적 폐지…“국가가 채점한 점수를 국가가 지운다”」, 교육플러스, 2026년 10월 13일. https://www.edpl.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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