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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마다 멋진 졸업생상이 있다.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이며 더불어 사는 사람. 그런데 그 문장은 대개 현관 액자나 학교 홈페이지 첫 화면에 박제된 채 교실 문을 넘지 못한다. 이 책 3·4장은 정확히 그 단절을 겨눈다. 비전이 캐비닛 속 문서로 남지 않으려면 무엇을 거꾸로 줄 세워야 하는가.

미션을 수업으로 번역하는 법 — 3·4장 미션에서 실행으로, 미래학습 교육과정

도착지에서 거꾸로 짚어 내려오는 설계

저자 맥타이와 커티스가 3·4장에서 하는 일은 단순하다. 교실 단원을 설계할 때 쓰던 백워드 설계(Backward Design)를 학교 시스템 전체로 끌어올린다.

백워드 설계는 UbD(Understanding by Design)의 심장이다. 출발점이 활동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이 핵심이다. 보통의 수업 준비는 “이번 단원에서 무슨 활동을 할까”로 시작한다. 백워드 설계는 반대로 간다. “수업이 끝난 뒤 학생이 무엇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하는가”를 먼저 정하고, 그것을 입증할 증거를 정한 다음, 마지막에 활동을 짠다.

단계 백워드 설계가 묻는 것 학교 차원으로 확장하면
① 원하는 결과 확인 전이목표·핵심 이해·핵심질문은 무엇인가 졸업생상·미션을 학습 성과로 번역
② 수용 가능한 증거 결정 무엇을 보면 달성을 알 수 있는가 코너스톤 수행과제·평가 체계
③ 학습경험·수업 계획 어떤 활동이 거기에 닿는가 교육과정·시간표·전문성 개발·자원

표에서 보듯 교실 단원 한 개를 설계하던 논리를 학교라는 단위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 3·4장의 발상이다. 단원 설계자가 교사라면, 시스템 설계자는 학교다.

여기서 저자들의 첫 단언이 나온다. 미션이 실행으로 이어지려면 교육과정, 평가, 수업, 전문성 개발, 자원 배분, 시간표, 평가지표가 전부 같은 목표를 향해 줄 맞춰야 한다. 줄이 어긋나는 순간 두 개의 교육과정이 생긴다. 문서로 선언된 교육과정과 실제로 가르쳐지는 교육과정. 저자들이 겨누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많은 학교 개혁이 멈춰 서는 까닭은 새 비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정렬이 깨져 있어서라는 것이 책의 핵심 진단이다. 비전은 화려한데 시간표는 30년 전 그대로인 학교를 우리는 너무 많이 안다.

전이목표, 핵심질문, 코너스톤 — 정렬의 세 닻

비전을 학습 경험으로 잇는 다리에는 구체적인 부품이 있다. 저자들은 교과 표준을 버리지 않는다. 그 안에 비판적 사고, 협업, 소통, 창의성 같은 역량을 얹어 하나의 수행 속에서 함께 길러내는 이해 중심 교육과정을 세운다. 내용과 역량을 두 트랙으로 나눠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확히는, 역량은 내용을 다루는 방식 안에서만 길러진다.

그 정렬을 떠받치는 세 개의 닻이 전이목표, 포괄적 핵심질문, 코너스톤 수행과제다.

전이목표(Transfer Goals)는 시험을 다 잊은 뒤에도 남기를 바라는 능력이다. “교사의 안내 없이도 자립적으로 ~할 수 있다”가 진술의 표지다. 이 한 문장이 평소 수업 목표와 결정적으로 갈린다.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안다”는 습득 목표지, 전이목표가 아니다. “낯선 실생활 문제를 수학 모델로 옮겨 스스로 해결한다”가 전이목표다. 소수의 광범위한 목표로 진술되고 여러 학년·여러 단원에 걸쳐 반복 추구된다.

포괄적 핵심질문(Overarching Essential Questions)은 한 단원에 갇히지 않고 여러 학년·교과를 가로지르는 큰 질문이다. 정답이 하나로 닫히지 않는다. 같은 질문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깊고 정교하게 되돌아오는 나선형 구조를 만든다.

코너스톤 수행과제(Cornerstone Performance Tasks)는 교육과정의 주춧돌이다. 건물 초석처럼 교육과정을 가장 중요한 수행 중심으로 고정한다. 실제(authentic) 맥락에서 지식과 역량을 통합적으로 발휘하게 하고, 교육과정 전반에 반복 배치되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복잡하고 자립적으로 진화한다. 흔히 루브릭과 짝지어진다.

이 셋을 떠받치는 더 깊은 틀이 UbD의 A-M-T 세 목표 유형이다. 좋은 교육과정은 이 세 유형이 균형 잡혀 있다.

목표 유형 무엇을 겨냥하나 진술 예시 짝지어지는 도구
습득(Acquisition) 지식·기능을 익힌다 핵심 용어와 절차를 안다 퀴즈·연습문제
의미형성(Meaning) 개념을 이해하고 의미를 구성한다 왜 그런지 설명한다 포괄적 핵심질문
전이(Transfer) 새 상황에 자율적으로 적용한다 안내 없이 스스로 해결한다 전이목표·코너스톤 과제

표가 보여주는 것은 우선순위다. 한국 교실의 수업 목표는 대부분 습득(A)에 몰려 있다. 의미형성(M)과 전이(T)가 비어 있으면 학생은 시험 다음 날 모든 것을 반납한다.

수직 정렬(Vertical Alignment)은 이 세 닻을 K-12 전체에 위아래로 꿴다. 같은 전이목표와 핵심질문이 학년이 올라갈 때 끊기거나 불필요하게 중복되지 않고 점진적으로 깊어지게 배열한다. 학년 사이의 구멍과 겹침을 동시에 막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 모든 정렬이 향하는 기준이 보장되고 실행가능한 교육과정(Guaranteed and Viable Curriculum)이다. 마자노(Marzano)가 학생 성취에 가장 큰 학교 차원 요인으로 제시한 개념으로, 두 조건을 함께 충족해야 한다. 보장은 어느 교사에게 배정되든 학생이 핵심을 반드시 배운다는 뜻이고, 실행가능은 주어진 시수 안에 실제로 다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양이 현실적이라는 뜻이다. 둘 중 하나만 충족하면 무용지물이다. 가르칠 양이 시수를 초과하면 보장은 종이 위 약속으로 끝난다.

실제 과제를 설계하는 두 도구 — 표준 풀어헤치기와 GRASPS

추상적 비전을 과제로 내리는 데는 두 도구가 쓰인다. 둘 다 UbD 정전의 도구이며, 미션을 실행으로 번역하는 마지막 손잡이다.

하나는 표준 풀어헤치기(unpacking standards)다. 성취기준을 네 범주로 풀어 비전과 잇는다.

풀어헤치는 범주 묻는 질문 산출물
장기 전이목표 끝내 무엇을 스스로 하길 바라나 학년·교과를 관통하는 소수 목표
포괄적 이해 잊지 않길 바라는 빅 아이디어는 한 문장 일반화
포괄적 핵심질문 탐구를 계속 자극할 큰 질문은 나선형 반복 질문
반복 코너스톤 과제 무엇으로 그것을 입증하나 학년별로 진화하는 수행과제

성취기준이라는 평면적 목록이 이 네 범주를 통과하면 입체적인 학습 경로로 바뀐다.

다른 하나는 실제적 수행과제를 짜는 GRASPS다. 코너스톤 과제를 막연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진짜 맥락의 임무로 만든다.

요소 의미 우리 교실로 옮긴 예시(필자의 가상 설계)
Goal 목표 해결할 과제 우리 동네 분리수거 참여율을 높인다
Role 역할 학생이 맡는 입장 구청 환경 캠페인 기획자
Audience 대상 결과물을 받는 사람 아파트 주민과 관리사무소
Situation 상황 맥락·제약 예산과 게시 공간이 한정됨
Product 결과물 만들어 낼 것 캠페인 포스터와 데이터 근거 제안서
Standards 기준 무엇으로 평가하나 자료 해석·설득력·실현가능성 루브릭

위 표의 분리수거 캠페인은 필자가 GRASPS로 짜 본 가상의 코너스톤 과제다. 같은 틀로 중학교 1학년 과학이라면 “교실 미세먼지 측정 후 환기 정책을 학교에 제안하는 연구원” 같은 과제를 설계할 수 있다. 핵심은 학생이 시험지가 아니라 진짜 청중 앞에서 통합된 역량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한국 교실로 옮겨 보면 — 2022 개정과 고교학점제의 보조선

여기서부터는 책에 적힌 내용이 아니라 한국 교실 독자로서 필자가 읽어 낸 보조선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역량 함양, 깊이 있는 학습, 핵심 아이디어, 교과 간 연계는 이 책의 언어와 거의 동형이다. 다만 동형이라는 말을 같은 말로 오해하면 안 된다.

2022 개정 용어 이 책의 용어 필자가 보는 관계
역량 전이목표 역량을 “안내 없이 ~할 수 있다”로 진술하면 설계 가능한 목표가 됨
깊이 있는 학습 이해·의미형성(M) 깊이의 정체가 빅 아이디어임을 구체화
핵심 아이디어 포괄적 이해·빅 아이디어 거의 같은 자리
교과 간 연계 포괄적 핵심질문 연계의 접착제가 가로지르는 질문
과정 중심 평가 코너스톤 과제+루브릭 단발 수행평가를 학년 관통 체계로 격상

표의 오른쪽이 왼쪽에 보태는 것은 방향이 아니라 도구다. 2022 개정은 무엇을 지향할지 말하지만, 어떻게 거꾸로 설계할지는 학교의 몫으로 남긴다. 이 책은 그 빈칸을 채우는 손잡이를 준다.

특히 고교학점제는 이 틀이 가장 절실한 무대다. 선택과목이 늘수록 학생의 학습 경험은 파편으로 흩어질 위험이 크다. 구조적으로 보면, 과목이 갈라질수록 학교가 공통으로 책임지는 전이목표와 핵심질문은 오히려 더 또렷해야 한다. 무엇을 골라 듣든 졸업할 때 반드시 데려가야 할 능력 몇 가지를 학교가 붙잡아 두지 않으면, 학점제는 보장된 교육과정이 아니라 보장되지 않은 뷔페가 된다.

그리고 보장되고 실행가능한 교육과정 기준은 한국 교사가 늘 호소하는 진도 과다 문제를 정면으로 친다. 우리 교육과정은 보장과 실행가능 중 어느 쪽이 더 약한가. 필자가 보기에 한국은 보장은 비교적 강하지만(어느 반이든 진도는 나간다) 실행가능이 무너져 있다. 시수에 비해 양이 너무 많아, 다 가르치느라 아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단원으로 떠밀린다. 진도를 다 뺐다는 말과 학생이 다 배웠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다.

함께 생각할 질문

  • 우리 학교 미션과 졸업생상을 백워드 설계로 거꾸로 짚어 내려가면, 지금의 교육과정·평가·시간표 중 미션과 어긋나 정렬되지 않은 지점은 어디인가.
  • 우리 교과(또는 학년)의 전이목표를 “교사 없이도 학생이 자립적으로 ~할 수 있다”로 3~5개만 써 보면, 평소의 수업 목표와 무엇이 달라지는가.
  • 여러 학년을 가로지를 포괄적 핵심질문 하나를 정한다면, 그 질문을 초1과 초6(또는 중1과 고3)에서 각각 어떤 다른 깊이로 다룰 것인가.
  • 우리 교육과정에 코너스톤 수행과제를 단 하나 심는다면 어떤 실제 맥락이 좋을까. GRASPS로 초안을 잡아 보자.
  • 우리 교육과정은 보장과 실행가능 중 어느 쪽이 더 취약한가. 진도를 다 뺐다는 것과 학생이 다 배웠다는 것이 어긋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우리 교실 적용 체크리스트

점검 항목 점검 질문
미션-실행 정렬 우리 학교의 졸업생상이 시간표·평가·전문성 개발과 같은 방향을 향하는가
전이목표 진술 우리 목표가 “안내 없이 스스로 ~한다” 형태로 쓰여 있는가, 아니면 습득에만 머무는가
A-M-T 균형 한 단원에 습득·의미형성·전이가 모두 들어 있는가, 습득만 가득한가
포괄적 핵심질문 학년이 올라갈수록 다시 돌아오는 큰 질문이 한 개라도 있는가
코너스톤 과제 실제 청중·실제 맥락의 통합 수행과제가 학년에 닻으로 박혀 있는가
수직 정렬 학년 사이에 가장 먼저 메워야 할 구멍이나 불필요한 중복은 무엇인가
보장 어느 교사에게 배정돼도 학생이 핵심을 반드시 배우는가
실행가능 주어진 시수 안에 그 양을 실제로 다 가르칠 수 있는가

출처

원서: McTighe, J., & Curtis, G. Leading Modern Learning: A Blueprint for Vision-Driven Schools. Solution Tree Press. 한국어판: 제이 맥타이·그레그 커티스 지음, 강현석·조인숙 옮김, 《학교, 이렇게 바꾼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020. (이 글은 한국어판을 기준으로 3·4장을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