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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잘 쓰는 것과 잘 아는 것은 다르다
한 학생이 일어서서 발표한다. 깔끔한 디자인, 또렷한 논지, AI로 20분 만에 만든 슬라이드다. 그런데 슬라이드에서 살짝 벗어난 질문 하나에 말이 막힌다. 정작 본인이 당황한다. 그의 실감 속에서 그 발표의 품질은 곧 자신의 이해였기 때문이다. 인지심리학자 한소원이 《지능 파산》에서 든 장면이다. AI가 만든 자료를 자랑스럽게 내밀면서, 그것이 제 것이 아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AI 활용 능력, 이른바 AI 리터러시를 의심 없는 미덕으로 가르친다. 한소원이 소개하는 2025년의 한 연구가 그 미덕에 금을 낸다. 원래 더닝-크루거 효과는 초보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전문가는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는 경향을 말한다. AI를 쓰면 이 곡선이 평평해지는데, 초보가 정확해져서가 아니다. 모두가 과대평가하는 쪽으로 쏠린다. 게다가 AI를 잘 다루는 사람일수록 과대평가가 더 심하다. 도구를 잘 몬다는 확신이, 내용을 잘 안다는 착각으로 번진다.
이 현상에는 이름이 있다. 인지적 오프로딩, 생각의 부담을 바깥 대상에 넘기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기억에 한 일과 같다. 번호가 연락처 앱에 사는 순간 우리는 아무의 번호도 외우지 못하게 되는데, 그 상실을 느끼지 못한다. 전화기가 늘 답을 주기 때문이다. AI에 넘기는 것은 전화번호가 아니라 사고의 고된 한복판이다. 씨름하고, 틀려 보고, 견해가 더디게 여물어 가는 그 과정 말이다. 함정은 여기 있다. 도구가 매끈한 결과를 곧바로 돌려주니, 실제로 한 일은 세 줄을 입력한 것뿐인데도 실감은 유능함이다. 내 능력과 도구의 능력 사이 경계가 흐려지고, 내 앎이 어디서 끝나는지를 아는 조용한 감각, 곧 자기 평가가 기준점을 잃는다.
이것이 왜 배움에서 특히 문제인가. 보정(calibration), 곧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꽤 정확히 아는 능력이야말로 전문성을 떠받치는 뼈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모든 것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언제 확인하고 언제 물러설지 안다. AI 유창함이 마모시키는 것이 바로 그 감각이다. 같은 글에서 신경과학자 호바스는 더 날카롭게 말한다. 가장 큰 문제는 배움의 어려운 부분을 외주 주는 것이라고. 그 어려움이야말로 뇌가 정보를 깊이 처리하며 고차원적 사고를 길러 내던 자리였다.
공정한 반론이 있다. 도구를 잘 쓰는 것 자체가 실력 아닌가. 계산기 쓰는 사람을 산수 부정행위라 하지 않고 우리는 지나왔다. 게다가 그 연구가 잰 것은 능력이 아니라 자기 평가다. 새 도구에 대한 보정이 잠시 흔들릴 뿐 곧 자리를 잡을지도 모른다. 둘 다 일리가 있고 함께 쥐고 있어야 한다. 다만 계산기 비유에는 한계가 있다. 계산기의 출력은 누가 봐도 계산기의 것이고 모두 그렇게 안다. AI의 출력은 일인칭으로 도착한다. 내 말투, 내 구성으로 온다. 계산기의 42가 결코 겪지 않는 방식으로 그것이 내 이해로 오인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발견은 AI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더 좁고 더 불편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을 나쁘게 만든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아이러니를 안다. 바로 이 블로그가 며칠 전 AI로 발표용 앱 만드는 법을 안내했고, 산출이 여덟 배로 뛰었다는 연구소의 자랑을 옮겼다. 그 글들을 지지한다. 생산성은 진짜다. 다만 보정 부채는 그 성과에 붙은 잔글씨이고, 없는 척하는 것 또한 일종의 과신이다. 그러니 교실에서든 내 한 주에서든 지켜야 할 것은 AI 리터러시가 아니다. 그것은 알아서 자란다. 더 어려운 습관, 도구가 좋은 결과를 건네준 뒤 이렇게 묻는 습관이다. 이 중 어디까지가 내가 실제로 이해한 것이고, 어디부터가 그냥 승인한 것인가. 답은 자주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정직한 계기다.
출처
- 한소원. (2026). 지능 파산. / 원문 요약: smallwave5, AI를 많이 사용할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https://brunch.co.kr/@smallwave5/2276









